전영숙
대만사범대학교 객좌교수
안녕하세요? 저는 샤카디타 코리아의 회원 전영숙이라고 합니다. 작년 인도네시아 대회에 우연히 참석하게 되었다가 샤코의 열렬 회원이 되었습니다. 중문학이 전공인 저는 이번 학기에 대만사범대학에서 한국학 관련 수업을 맡아 타이베이에 근무하고 있답니다. 날씨가 조금 무덥기는 하지만 타이베이는 정말 마음 편하고 살기 좋은 도시인 것 같습니다. 훌륭한 시민의식에 볼거리 가득한 박물관, 편리한 지하철, 아름다운 바다와 산, 온천 등 타이베이 생활은 매일 매일 신나고 즐겁습니다. 뭐 가끔 지진이 나서 살짝 긴장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건 제가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타이베이의 생활 중 제일 보람되고 즐거운 일은 뭐니 뭐니 해도 대만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 동안 다양한 나라 학생들을 가르쳐 봤지만 대만 대학생은 특히 더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학교생활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맡은 수업은 일주일에 총 10시간입니다. <한국학개론>, <한국역사>, <한국문학명저선독> 각각 2시간과 4시간의 한국어과목이 있습니다. 어학 수업이 아닌 경우에는 원어 강의를 해야 해서 강의자료 만들랴, 중국어 연습하랴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참 보람 있고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느끼는 것도 많답니다. 전공이 아닌데도 이곳 학생들의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열기는 정말 뜨거운 것 같습니다. 청강생도 있는데 참 열심히 공부합니다.
<한국학개론> 시간에는 발표와 토론 시간도 종종 갖는데, 한국을 다녀온 학생들은 한국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사교육문제, 화교학교, 야식문화 등에 대해서 꼼꼼히 분석해서 발표하는 걸 보았습니다. 아이들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구나 싶어 놀랐습니다. 또 한국을 가보지 않은 학생 중 한국 예능프로에서 관심 분야만을 추려서 꼼꼼하게 분석하고 자료를 모아 나가는 학생도 보았습니다. 이 학생은 향후 대만방송국의 PD로 활약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의 민주화나 다문화가정 문제를 대만의 경우와 비교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제 대만의 대학생은 한국의 아이돌 가수나 한국 드라마를 쫓는 수준을 벗어나 점점 전문적인 눈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문학명저선독> 수업에서는 현대시 몇 편을 읽었는데, 예상과 달리 한용운이나 윤동주의 시도 마음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놀랍고 기뻤습니다. 이참에 용기를 내어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 가운데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읽게 하고 팀별로 번역을 시켜보았는데 눈덩이가 커지듯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은 스님이 어떻게 젊은이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아느냐며 스님인데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4주는 얼마 전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를 발췌하여 어려운 단어만 미리 알려주고 강독을 했는데 작품에 심취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독이 끝나갈 즈음에 이 두 권의 책이 이미 중문 번역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번역본에 의지하지 않고 원작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제 대만 학생들은 한국 드라마나 노래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에도 관심을 갖는 듯합니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는 학생들의 목적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학생은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거나 드라마를 알아듣기 위해서, 또 어떤 학생은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서 배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한국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또 한국어를 배워 한국에 가서 중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곳 청년들의 취업 걱정도 한국 청년보다 덜하지 않다고 하고, 대졸자 초년 월급이 10여 년째 제자리걸음이라고도 합니다. 부디 이들 학생들에게 한국과 대만 사이에서 보람된 역할을 할 기회가 오면 정말 좋겠습니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흐르는 구름과 푸른 하늘, 아열대 지방 특유의 얼굴보다 더 큰 나뭇잎에 부는 바람을 보며 대만섬의 동쪽 끝 태평양을 상상해 보곤 합니다. 공기가 더우니 마음도 쉽게 항복되기에, 핑계 삼아 게으름을 피우며 자주 놀고 있습니다.
타이베이의 날씨 변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늘이 찢어질 듯 천둥과 집중호우가 쏟아지다가 몇 시간 후면 이곳에 빗방울이 떨어진 적이 언제 있기라도 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뜨거운 햇살을 토해내고 대지는 후다닥 물기를 털어냅니다.
또한 타이베이 시내 곳곳에는 채식 식당이 아주 흔합니다. 채식 식당에는 주로 불자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식당 밖이나 안에 각종 불교 활동을 알리는 행사 소식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과연 듣던 바대로 대만 불교의 활동 범위는 매우 넓은 것 같습니다. 한국 같으면 시민단체가 해야 할 일들의 상당수를 불교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만 불교는 사회에서 칭찬을 많이 받고 있고,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래서인지 대만불교가 다소 권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스님들은 재가자를 만나면 은근히 권위를 드러냅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 불교에서 스님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다정함과 편안함과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저만 해외에서 신나게 지내는 것 같아 살짝 송구스럽습니다. 저의 타이베이 생활이 정히 너무 부러워 못 참겠다 싶으시면 7월 안에 연락주세요. 재워드리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랍니다. 참, 선착순이라는 거 꼭 기억하세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