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덕재스님
2020년 5월 2일부터 8월 1일까지 샤카디타 코리아 회원들, 총 21명이 조은수 교수님의 지도하에 게리 라르킨 Geri Larkin 저, 『Stumbling Toward Enlightenment』 강독 모임을 가졌다. 이 책은 게리 라르킨이라는 한 미국 여성이 한국 스님을 만난 후 깨달음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참가자들을 대표하여 덕재스님의 후기를 싣는다.
* 사진: 덕재스님(중심) 외 고급영어강독회 참가자들
몇 년 전 비구니 회관에서 스님들을 모아 3주간의 영어 통·번역 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모였던 비구니 스님들은 마치 다시 고3 수험생이 된 것처럼 공부 열기로 비구니 회관 전체를 물들였다. 매일 하던 고된 일에서 벗어나는 것도 즐거움이었지만 가장 큰 기쁨은 부처님 경전 외의 공부는 삿된 것이 아닐까 염려되어 애써 멀리해 왔던 영어를 대놓고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는지 같이 수강하던 스님들도 무섭게 공부를 했다. 공부하다 지치면 모여서 쉴 수 있는 장소인 지대방(휴게실)에서 영어만 쓰자는 규칙을 정해놓고 출가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사미니 스님들부터 법랍이 40년도 넘은 스님들까지 모두 “You(당신)”라고 지칭하며 영어로만 대화했다. 덕분에 승가에서는 좀처럼 깨기 어려울 것 같던 나이와 법랍의 장벽을 깨고 서로 간에 즐거운 도반이 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 같이 공부했던 스님들을 생각하면 애틋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뜻 깊은 3주가 지나고 강의 마지막 날에 마무리 인사를 하려는데 마침 샤카디타 회원들이 단체 소개차 강의실에 들어왔다. 설명에 의하면 ‘샤카디타’는 붓다의 딸들이라는 뜻이며,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하는 국제적 여성 불자 조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들께서도 함께 샤카디타 회원으로 활동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그동안 나는 특정 단체에서 활동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분들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지고 동시에 스님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회원으로 등록을 했다.
그런데 올해 초 고급영어강독회를 개설한다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바로 ‘게리 라르킨? 깨달음을 향해 가는 좌충우돌 이야기라고? 그렇다면 이거야말로 내가 읽어보고자 했던 종류의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서울대 철학과의 조은수 교수님이 강독회를 이끌어 간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텐진 빠모 스님의 초청 법회에 참석한 것이 유일한 회원 활동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때 조은수 교수님의 매끄럽고 품위 있는 통역에 크게 감탄한 적이 있다. 당연히 나는 곧바로 강독회 참가 신청을 했다.
처음에 나는 강독회를 안일하게 생각했다. ‘교수님이 다 읽고 해석해 주시겠지? 토요일 오전에 시간도 좋고 하니 라디오 청취하듯 틀어놓고 듣다 보면 영어가 늘 거야.’ 하는 생각으로 온라인 화상 모임에 접속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으로 공부하려던 나는 곧바로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날부터 강독회의 강도는 사람을 주눅 들게 했다. 마치 통·번역 수업에서 번역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이미 이론 수업은 마치고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간 것 같았다. 예습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강독회에 들어와도 의미가 없었다. 이미 다 읽고 온 것을 전제로 해서 강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꼼꼼히 예습해 오지 않은 사람은 따라가기에 만만치 않았다. 우리가 이용한 ‘줌(Zoom)’이라는 화상회의 서비스 시스템은 참가자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참가자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딴짓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은 계속 화면을 넘기고 번역이 잘되고 잘못된 부분을 읽어 나가고 있었고 나는 한 분의 먹방을 보며 첫 수업을 마쳤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카톡방에서는 회원들 각자가 번역을 맡을 장에 이름을 적고 있었다. 책은 전체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독회 회원들은 적어도 각각 2~3개씩 선택해서 책임지고 번역을 해야 하는 것이었고 나는 마지못해 한 장을 맡았다. 피해갈 수 없는 숫자였다. 저자가 생각이 자유로운 미국 사람이다 보니 책 내용에는 성(性)에 관련된 글도 있었는데 회원들은 다들 점잖아서 아무도 끝까지 그 장을 선택하지 선택하려 하지 않았다. 교수님은 나머지 남아 있는 장을 누가 할지 어서 적어내라고 했지만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용감한 스님이 손을 들었다! 그 해방감이란! 가슴이 조마조마하던 나는 스님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손을 드신 것 같아 그 상황이 더욱 코믹하게 느껴졌고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 느꼈던 일종의 스릴과 해방감이 그대로 떠올라 웃음이 터져 나온다.
강독회에 동참하기 전에 나는 우리나라의 선(禪)과 맥락을 같이하는 일본의 ‘젠(Zen)’과 중국의 ‘찬(Chan)’에 영향받은 서양 선사들의 말씀이 궁금해서 그분들의 책을 한국 번역본과 비교하며 혼자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다 가끔 원서의 내용이 번역서에서 오역이 되어 있거나 빠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어느 때는 원서의 이 말씀을 도대체 뭐라고 번역했을까 싶어 대조를 해보면 해당 단락 전체가 통째로 빠진 경우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오역이 심해서, 번역서로 읽을 때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가 원서를 보니 아주 쉽게 이해가 된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번역을 해보려 하니 짧은 분량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쉽지가 않았다. 남을 지적하기는 쉬워도 실제 번역을 해보면 문맥상 매끄러운 문장을 만들기가 어렵고 번역은 국어 실력도 좋아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다.
한 강독회에서 3달 안에 한 권의 원서를 읽어낸다는 것은 아마 드문 일일 것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수업이 매우 빠르게 진행됐고 3시간이 모자라 시간을 넘겨서 하는 날도 많았다. 몇 년 전 비구니 스님들과 공부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누군가 공부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지도를 맡아주신 교수님은 잠도 부족하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당신의 예리함을 감출 수가 없었고 강독회 회원들도 각자 바쁜 일정 속에서도 번역 숙제를 꼼꼼히 해오고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대부분 재가 여성 불자로 이루어진 강독회 모임은 그야말로 영어 좀 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느긋하게 설렁설렁 듣고 있는 것 같다가도 슬쩍 넘어가려고 하면 영락없었다. 다들 매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강독회가 아니라 전문 출판사 직원들과 함께 감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회원들의 실력과 열의가 수업을 흥미롭게 만들었다.
평범한 한 미국 여성이 자신과 문화가 전혀 다른 한국 스님을 만나서 참선을 접하고 여러 가지 좌충우돌 끝에 자신의 삶 전체가 바뀐다는 책 내용도 흥미로웠다. 자유로운 미국 여성이 엄격하고 어려울 수 있는 한국의 선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경험으로 소화해내고, 자신의 언어로 수행의 이모저모를 알려주는데, ‘말은 말일 뿐’이라고 하지만 긍정적인 말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참선을 통해 느꼈던 내면의 변화를 알게 되고 서양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순수하게 부처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저자가 이끄는 대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좌충우돌 끝에 느꼈던 수행의 편안함이나 안도감을 같이 경험하게 된다. ‘행복’이라고 말하면 ‘행복한 느낌’이 가슴에 서리는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 저자의 밝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즐거워진다.
강독회에서 무서운 속도로 책 한 권을 끝낸 후에 나름 혼자서 뿌듯해했다. 혼자서 읽었더라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이렇게 여러 명과 나누는 기쁨도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같은 관심사를 가진 훌륭한 도반들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뛰어난 영어 실력과 인품을 갖춘 회원들과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배운 것이 많은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회원들이 보여준 끝없는 지적 호기심과 성실함은 내가 이 강독회를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무리하는데 큰 자극제가 되었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겸손과 타인의 의견에 대한 수용력은 강독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때로는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잠시 입정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짧은 입정이 단순히 흥미나 영어 공부만의 목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분위기를 경건하게 만들었다. 또한, 저자의 미국식 유머 가운데는 우스갯소리 너머 우리 마음을 울리는 내용도 있었고 다시 한번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보게 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래서 단지 ‘영어책 한 권을 다 읽었다’라는 느낌보다 좋은 도반들과 마음공부를 같이한 느낌이었다.
강독회가 끝나고 그때의 소감이 이렇게 술술 써지는 것은 아직도 그날의 즐거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9월에 새로운 강독회가 있다. 이번엔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감동을 주고받고 나눌 수 있을지 내심 기다려진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부처님의 맑은 기운을 도반들과 나눌 생각을 하니 입가에 미소가 퍼진다. 이번에도 토요일의 아침을 향기롭게 열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