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자수전시회 감상문;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 글: 이호련

이호련(샤카디타 코리아 회원)

고등학교 시절 ‘가사’라는 수업 시간이 있었다. 자수 도안집을 펼쳐 보여주시던 뽀글머리 선생님이 슬쩍 떠오른다. 여러 개의 도안집 중에서 친구들과 나는 흉배를 선택했다. 운동장에서 체력장 훈련을 하다 들어와, 얌전히 앉아 빨간 볼의 조선 시대 아씨처럼 색실을 바꿔가며 결에 따라 한 땀 한 땀 천을 오가다 보면 어느덧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들린다. 어디까지 수놓아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집에 가져가서 꾸벅꾸벅 졸며 자수 숙제를 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왜 자수가 꼭 익힐 기술로 여학교 과목이 되었을까?

자수는 전 세계적으로 행해져 왔는데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기원했다. 기원전 3만 년 전 손으로 한 땀 한 땀 떠서 장식한 장화, 모자의 화석유물을 고고학자가 발견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있었다니! 한반도 자수의 역사는 코리아넷에 따르면 2천 년 이상 되었다. 가장 꽃피운 시절은 조선 시대였을까? 삼국시대? 고려 시대? 근현대?

우리가 아는 자수는 전통자수인데 근현대자수는 어떤 모습일까? 구한말의 개항, 식민시대, 한국전쟁, 산업발전기를 거치며 지금까지 어떤 변형체로 살아남았을까? 동학혁명, 청일전쟁 등이 임박한 1893년, 일본 작가 혼마가 쓴 책에는 야만과 문명이 막 교차하려 하는 조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 나타난 조선의 자수작품과 자개장을 보고 47개국의 2700만 명 이상의 참가인들이 감탄했다는 《고종실록》의 기록도 있다. 과연 어떤 기록이 옳을까? 21세기에 서 있는 내가 봐도 감탄할 시카고 출품 자수작품들.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아온 의복, 베개, 침구, 병풍, 수저집, 보자기, 복주머니, 안경집 등 천이 있는 모든 곳에 놓인 자수는 실용과 장식만을 위해 자수를 놓은 것일까? 여자들의 전유물이었을까? 아니다! 근현대시대에는 부유층의 급부상으로 남성들이 집단으로 수를 놓아 상업적으로 팔았고, 일본 유학에서 자수를 전공하면 무시험으로 교원자격증을 받아 귀국하여 교단에 서고 시집을 잘 간다고 하여 부유층의 자제들은 일본으로 유학 가서 자수를 전공했다. 이 선생님들의 작품들은 그러데이션이 아름답고 도쿄박물관에서 느꼈던 일본풍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일본풍을 버리고 회화를 자수화한 작품들, 추상화를 자수로 표현한 작품들, 무궁화로 통일을 기원한 작품 등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앞선 질문의 답을 자수의 역사를 통해 근현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오방색 잔치국수를 사주신 김계숙 선생님, 자동차로 우리를 편안히 안내한 안미경 선생님, 김은희 선생님의 깊이 있는 자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니 작품이 새롭게 보였다. 또 가고 싶다! 서양에 먼저 데뷔한 일본풍 자수는 그러데이션과 데크레셴도 양식의 자수로 매끈매끈, 단단하게 꼰 실을 사용하여 우직하면서도 섬세하고 치밀하고 우아한 꾸안꾸 스타일의 한국의 화려한 자수가 대비되는 전시회. 몬드리안식의 네모세모 추상자수 등 정말 몇 달은 봐야 할 멋진 작품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태양속에 산다는 전설의 삼족오인가? 전시회의 최고의 찬미는 부처님의 괘불, 웅장한 팔상도와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