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은희(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
지난 2024년 5월 27일 전국비구니회관 메따공연장에서 ‘비구니인물사전 디지털아카이브 편찬보고회’가 열렸다. 나는 이 행사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지난 3년간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봉사를 하면서 내가 받은 것이 더 많은데 감사패까지 받으니 좀 송구스러웠다.
행사는 전체 2부로 진행되었는데, 1부에서는 인물사전을 만든 과정과 가치를 공감하는 시간이었고, 2부는 인물사전에 있는 많은 스님들 중 독립운동에 참여한 봉려관스님, 성해스님, 상근스님을 중심으로 뮤지컬을 만들어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내가 이 작업에 참여할 때에는 우리가 한 일이 이렇게까지 확장될 줄 몰랐다. 뮤지컬을 보신 많은 스님들이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연구소 소장이신 수경스님의 경과보고를 들으면서 그 동안 묵묵히 뒤에서 우리를 후원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이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별히 이날 뮤지컬 공연을 올린다는 말을 듣고 두옥문도회와 청룡사(법기문중)에서도 일정 금액을 후원해 주셨다고 한다. 소장 수경 스님은 이날 행사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어 독학으로 브로셔 디자인까지 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뮤지컬 공연 대본이 완성되기까지 야성 이진구 단장님을 중심으로 수경 스님, 혜달 스님(봉려관 불교문화연구원 원장), 대원 스님(전국비구니회 문화부장), 전영숙 선생님이 감수를 맡아 내용을 고증하고 역할을 나누어 함께 대본을 낭독해 가며 문구를 다듬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비구니스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대 철학과의 조은수 교수님을 통해서였다. 2021년 봄, 조 교수님께서 전국비구니회산하의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이하 연구소로 약칭)에서 자원봉사를 할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 얼마 전부터 조 교수님을 중심으로, 삼우스님이 녹음해 두신 한국비구니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면서 비구니스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막상 재가자로서 연구소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무슨 봉사를 하는지도 몰랐다. 그동안 절에 다니면서 다양한 봉사를 하고 느낀 점은 본인의 능력에 맞고 흥미가 있는 분야에 봉사를 해야 꾸준히 할 수 있고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내가 맡은 일은 전국비구니회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던 내용을 중심으로 전국비구니회의 역사를 정리해서 타임라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종종 연구소 회의에도 나갔는데, 비구니관련 자료를 디지털화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원래 비구니연구소의 소장이신 수경스님은 2020년 1월 연구소를 맡으면서, 처음에는 본각스님이 이끌던 한국비구니연구소에서 제작한 비구니 관련 신문자료집이 2012년도까지 스크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를 이어서 2013년도부터 스크랩을 해서 책으로 엮으려고 생각하셨다 한다. 그러나 조은수 교수님(고문), 정문 스님(국장), 전영숙 선생님(책임연구원)과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면서, 현대는 종이책보다는 디지털시대인데 자료를 종이책으로 만들어서 불자들만 공유하는 것보다는 디지털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대에 맞게 디지털화 작업을 할 것을 결심하셨다 한다. 그래서 첫 해인 2020년도에는 비구니관련 신문기사를 DB화 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진행했다. 이때는 봉사자들이 아니라 컴퓨터를 잘하는 대학원생들을 알바생으로 쓰면서 작업했다. 데이터 구축과 관련해서 교육을 해줄만한 마땅한 전문가를 찾지 못해서 고민하던 중 조은수 교수님의 소개로 2021년 5월에 이 방면의 전문가이신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인문학연구소 소장 김현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김현 교수님의 지시에 따라 메타데이터 작업을 진행하면, 교수님은 작업 결과를 받아 인터넷에 올려주셨다고 한다.
한편 전영숙 선생님은 신문기사 디지털화 작업을 지켜보면서 『비구니수행담록』에 등장하는 329명의 비구니스님에 대한 디지털인물사전을 만들 구상을 하고, 샘플을 만들어 회의에서 논의했다. 이에 조은수 교수님이 이 제안에 힘을 실어주고자 네이버 등 포탈업체에 알아보았으나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수요가 많지 않다며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전영숙 선생님은 우선 원고 작업을 진행하고, 정 받아줄 곳이 없으면 위키피디아에 올리는 방법을 배워서 우리 스스로 비구니인물사전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연구소 회의에서 소장이신 수경 스님이 이 안을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그래서 2021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약 1년간 『비구니수행담록』을 사전 형태로 다듬어 1차 원고를 작성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전영숙 선생님에게 이 작업에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는 제안을 2021년 9월 초에 받아 이때부터 작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비록 뒤늦게 합류하기는 했지만 작업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돌이켜 볼 때 지난 30년 동안 인터넷 세상이 발달하면서 제일 편했던 것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인터넷에 물어보면 다 알려 준다는 것이다. 네이버 백과, 다음 백과, 위키피디아 등에서 잘 정리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고마웠다. 인터넷이 없던 세상에서 젊은 날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이것은 정말 신세계였다. 이런 정보를 이용하면서 나는 누군가 힘들게 구축한 것을 공짜로 이용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미안하기도 했었다.
가끔 영어 위키피디아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부실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보아도 그것을 보충하거나 고칠 능력이 되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또 지금도 영어 위키피디아에 들어가 보면 서구 출신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 역사가 더 깊고 광대한 아카이브를 가진 우리나라 비구니스님들의 이야기가 위키피디아에 없다는 사실에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비구니인물사전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다고? 비록 IT 능력은 아래아 한글과 PPT 만드는 능력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이 일에 무척 흥미를 느꼈다.
사전의 형태는 전영숙 선생님이 제안한 형태를 중심으로 했고, 필자와 이병두 거사님, 이경호 선생님, 전영숙 선생님 이렇게 네 사람이 1차 원고 작업을 했다. 수경 스님은 이 작업에 특별히 열심히 참여했다는 점을 높이 사서 행사날 이병두 거사님과 나에게 감사패까지 주셨다!
사전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매주 목요일 1시간 남짓 화상회의를 하면서 서로 작업한 원고를 보고하고, 의논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회의를 약 2년 동안 했다. 전영숙 선생님은 이 작업에 참여했거나 적어도 교육에라도 참여한 모든 분들이 원고와 회의록, 기타 자료들을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다음카페를 만들어 운영했다. 지금도 다음카페에는 우리가 한 작업의 내용이 다 올려져 있다. 이렇게 자료를 모아가다 보니 『비구니수행담록』에 나와 있는 스님들 외에 다른 스님들에 대한 자료도 모아졌고, 지금도 계속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2022년 봄, 신문기사 디지털화 1차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난 후, 전영숙 선생님은 김현 교수님께 연구소에서는 그 동안 신문기사뿐 아니라 인물사전 작업도 해왔으며, 이제 원고 작업이 거의 마무리 되었는데, 이걸 위키피디아든 어디든 올리고 싶으니 교육을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전영숙은 고백하기를 신문기사 디지털 데이터 작업이 끝난 후 김현 교수님께 인물사전 디지털화 작업의 교육을 부탁드리기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다. 그리고 김현 교수님께 부탁을 드리던 날 혹시라도 거절하실까봐 속으로 엄청 긴장했었다고도 들었다. 그런데 김현교수님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일에 큰 관심을 보이셨다고 한다. 교수님은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디지털 큐레이터라고 하시면서 비구니연구소에서 이 분야를 배운다면 앞으로 그 길이 무궁무진하다고 격려해 주셨다 한다. 또한 본인이 교육을 시켜줄 것이니 관심 있는 사람을 모으라고 했고, 이렇게 해서 2022년 6월 3일 그 첫 교육이 시작되었고 한다. 나는 비록 이 첫날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 후에 수차례 이어진 교육에 시간이 날 때마다 참여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김현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초반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좌절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팀원끼리 묻고 의논하면서 조금씩 지식을 쌓았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 이상의 것은 포기하여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다행히 이병두 거사님께서 원고 작업에 이어 디지털 큐레이터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쉽게 일들이 진행되었다. 거사님은 수행담록의 PDF 파일에서 문자추출, 사진 추출을 해 주셔서 우리의 시간을 많이 절약하게 했다. 당시 OCR(광학문자인식) 기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후에 거사님은 데이터 분석 영역까지 주도적으로 해주셨다. 나에게 그 영역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의 일은 책으로 엮어진 수행담록의 내용을 디지털 비구니인물사전 아카이브에 올리고 데이터분석을 위한 정보와 각종 참고문헌을 인터넷에서 찾아 올리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먼저 20년 전에 그 많은 스님들의 정보를 모아 편집하고 책으로 편찬한 본각 스님과 참여한 학인 스님들의 노고가 절실히 느껴졌다. 현재의 우리는 있는 정보를 집에서 편안하게 편집하는 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 많은 스님들의 정보를 어떻게 모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많은 훌륭하신 스님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오탈자나 문장 확인,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여러 번 자료를 읽게 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감정을 맞이하기도 했다. 또 시대적으로 일제시대, 한국 전쟁, 산업화 시대에 집중되어 그 시대 우리나라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국사책에서 얻을 수 없던 역사였다.
또 팀원끼리 매주 줌 미팅으로 다시 한 번 확인차 읽어 볼 때마다 감동을 받았고 후에 비구니스님까지 참여한 줌 스터디 그룹에서 노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또 함께 프로젝트에 참가한 팀원들에게 느낀 연대감은 내게 중요한 기억이다. 그 분들에게 감사하다.
아! 모두 열심히 잘 사셨구나...
스님들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내 삶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아! 나는 너무 나태하게 막 사는구나....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나서 자세한 정보는 잊었지만 그 때 느꼈던 감동은 아직도 남아 있고 내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되었다.
2022년 말이 되면서 2023년 샤카디타세계대회 준비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에서 좀 멀어졌지만 지금도 뉴스에서 스님들의 기사가 나오면 참고문헌에 업데이트도 하고 사진도 올린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바뀐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유명한 사찰을 순례 했지만 지금은 가급적 비구니스님들의 사찰을 순례해서 사진을 찍어 비구니인물사전 아카이브에 올리는 것이다. 또 언젠가는 그 사찰들을 한 번씩 다 순례하는 꿈도 꾸어 본다. 글로만 알았던 곳을 눈으로 확인하는 꿈을 꾸어 보는 것이다.
또 2023년 샤카디타 세계대회 때 나는 1층 전시에 주로 참여하였는데 ‘비구니스님 옛사진 전시’를 기획했었다. 인물사전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시 사진을 받기 위해 견성암을 방문하였었는데 자세한 설명과 함께 옛 견성암 터도 방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다 이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디지털 비구니인물사전 아카이브의 업데이트는 끝이 없으며 내가 언제까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작업의 유령이 되는 자신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