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남혜경(라이프코치,여성불자 108인 회원)
그림 감상은 즐거운 일이지만 가끔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전시해 놓은 작품이 뭘 말하는지 작가의 의도가 뭔지 알아야 할 것 같고 아는 척해야 할 것 같다. 팝아트라고 하는 현대미술일 때는 이런 부담이 더하다.
김장할 때나 쓰는 커다란 플라스틱 소쿠리를 하늘에 닿을 듯이 쌓아놓지를 않나, 알록달록한 보따리 여러 개를 묶어서 트럭에 올려놓기도 한다. 이런 작품을 마주하면 <이거 뭐지?> 하는 생각부터 들면서 머리가 약간 아프다.
그냥 재미있다고 하면 무지해 보일 것 같고 뭔가 심오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아 시험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도록을 볼라치면, 보따리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보편적 일상을 현대예술의 맥락에 드리운 상징적인... 주어진 공간 속에서 최소한으로 개입하여 최대한의 경험으로 응답한다는 입장으로... 블라블라. 쉽게 풀어보면 여성의 집안일과 같은 일상의 이미지를 가져와 전시 공간을 많이 손대지 않고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최대한 표현하다... 뭐 그런 뜻인거 같다.
소쿠리나 보따리는 우리 세대에 익숙한 물건이다. 그걸 마주하면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감각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작가와 작품이 더 이해가 쉽고 정다워진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단박에 오는 아름다움이 첫째가 아니라 개념이나 관념을 표현하는 아이디어가 첫째라는 거다. 그래서 이런 미술을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라고 하나 보다.
이렇게나마 나름 정리하게 된 것은 이번에 들은 정형민 박사님의 <베니스의 한국미술> 특강 덕분이다.
1백 년의 역사가 있는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을 만든 지는 30년 되었다고 한다. 비엔날레 한국관에 출품한 작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개념미술이라고 하는 현대미술의 경향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깊어졌고 그 작가들에 대한 애정도 생겨났다.
특강 이전에는, <참 이게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라고? 이제는 전시장에 똥만 싸도 작품이 되겠구만>이라는 냉소였다면 정 박사님의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변호 덕분에 그 작품의 의미를 보다 부담 없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개념미술의 묘미는 보통의 풍경에서 찾아내는 의외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늘 접하고 느끼는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이아디어! 그러니 개념미술이라고 심오한 의미를 찾으려 말고 그냥 첫인상에 오는 느낌을 즐기면 된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경의 한순간을 작가는 잡아채서 작품으로 완성해 낸 거라고. 개념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의 말을 빌려오면 이렇다. “물질을 치장하는 게 아니라 미의 고찰을 위해 선택하는 것,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
그나저나 가수 조 아무개는 억울했겠다. 아이디어는 자신의 것이고 기술만 아웃소싱한 것일 뿐인데 그 개념미술을 이해받지 못하고 사기꾼 취급을 받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