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안거 참가기 – 김경화

김경화

샤카디타코리아 감사,
비즈니스∙라이프 전문코치
깊은 가을로 가는 길목, 단풍이 아름답던 10월 18일 이른 아침, 샤코 회원 40여명은 충북 영동군 반야사로 향했다. 쉼 없이 달려온 일상을 뒤로 하고, 엄마와 딸, 언니와 동생, 또는 친구와 함께 ‘모녀안거(母女安居)’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도 무심해서 혹은 욕심이 과해서 남보다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는 모녀, 자매들. 고즈넉한 산사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상처는 위로 받고, 욕심은 내려놓고, 서로를 보듬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달리는 차 속에 나란히 앉아 제각기 설렘과 기대를 품고 모녀안거 여행을 시작했다.
11시경 반야사에 도착하니 소박해서 더 경건한 대웅전과 그 앞에서 500년 세월을 살아온 배롱나무 두 그루가 반갑게 맞이한다. 충북 영동 백화산에 위치한 반야사는 720년 신라 성덕왕 때 세워진 천년고찰로, 백두대간의 하나인 백화산 물줄기가 산허리를 감아 도는 곳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프로그램 시작에 앞서 우선 점심 공양을 했다. 공양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평등하게 음식을 나누고 물 한 방울도 낭비하지 않는 불교의 전통적인 식사법. 고사리와 도라지, 버섯 등 각종 나물반찬에 갓 지은 쌀밥의 정갈하고 담백한 맛에 반해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공양 후 재마 스님을 모시고, 입제 의식과 함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왔나’라는 주제로 글을 짓는 자기소개 시간은 모두들 시인의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글을 쓰고, 함께 나누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미처 몰랐던 딸아이의 속마음을 살짝 엿본 어머니의 눈가는 촉촉해졌고, 또 다른 어머니의 진솔한 낭독은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해주었다.

산사에서의 하룻밤, 따뜻한 동행

감동 속에서 휴식도 잊은 채 최동하 전문코치의 코칭 워크숍이 이어서 진행되었고,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빈 곳을 채우는 깨달음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비움과 채움 속에서 마음의 매듭이 슬며시 풀어지며 모난 마음이 둥글어지고, 앞에 앉은 내 어머니, 내 딸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우기 동안 길에서 벌레를 밟지 않기 위해 스님들이 일정한 곳에 머물면서 마음을 닦던 ‘안거’ 의미에 걸 맞는 ‘모녀안거’ 의 진정한 의미가 모두의 가슴 속에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어둠이 내려앉자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렸고, 숨어있던 반야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다음 날 새벽 다섯 시, 대웅전에서 작가 박원자 선생의 지도로 108배 절 수행을 하면서 2일차 일정을 시작했다. 오체투지의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배우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차가운 법당에 온몸을 내려놓으며, 정성을 다해 108배를 하면서 모두들 무엇을 간절히 기원했을까.
아침 공양 후 사찰 주변 숲 산책을 나섰다. 11살 된 삽살개 절집 지킴이 ‘청산’이가 앞장선다. 반야사 입구 돌다리를 건너자 소나무, 굴참나무, 참수리나무의 진한 향기가 온몸을 감싼다. 깊은 상념에 빠지거나 무념무상의 상태로 혹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촉촉한 숲길을 걸어 간 그 끝에는 관음전이 있었다. 연못 속 수련은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인적 드문 편백나무 숲은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삼림욕과 함께 숲 명상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사찰 뒤쪽의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남짓 올라가니 절벽 끝에 ‘문수전’이 우뚝 서 있다. 잠깐의 등반으로 밭아진 숨을 내쉬며 법당 앞에 서자 백화산이 한눈에 펼쳐졌다. 그 아래로는 반야사를 끼고 경북 상주까지 흘러가는 물길이 있다. 조선의 7대왕인 세조가 목욕하고 병이 나았다는 영천이다. 그림 같은 절경에 감탄하며 시원한 바람 속에 숨을 고르는 사이 마침 문수전에서 사시예불이 곧 시작된다고 했다. 무슨 인연으로 오늘 나는 이 산중의 암자에 와서 예불을 드리게 되는가. 스님의 청아한 목탁소리와 염불을 들으며 새삼 나와 나를 둘러싼 인연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반야사에서의 1박2일 모녀안거 프로그램은 불심이 깊은 회원도, 초보 불자도, 그저 어머니나 자매 손에 이끌려온 사람에게도 모두 몸과 정신을 맑게 하는 시간, 자신을 알아차리고 상대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이대로의 마음이 계속 되기를 발원하며, 인연의 소중함과 덧없음, 비움과 채움을 생각하며 돌아오는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