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버킷 리스트 그리고 소중한 경험 (글: 정형은)

정형은
G.E.P. 5기 수료생
샤카디타 홍콩대회 통번역 자원봉사자

불자의 '종류'를 나누는 이들이 있다. 나는 솔직히 진정한 불자나 엉터리 불자란 없다고 본다. 언행이 일치하고 선을 행하며 남을 해치지 않고 도움을 주며 바르게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불자 아니겠는가. 아니, 종교보다는 사람의 인성이 우선 되어야 한다. 불자임을 내세우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수처작주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무량심을 가식으로 행하고 자만에 빠져 구업을 일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보살'이나 '거사'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나 보살이 되고 아무나 거사가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나야말로 어떤 사람일까? 나는 과연 노력하는 사람일까? 남을 탓하기 전에 나나 잘 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고 사람들의 '다른' 점을 인정하려고 애쓰면서 다소 마음도 편안해지는 방법을 조금,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종종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이번 샤카디타 홍콩 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중 한 편은 '불자 중에는 불교를 학문적 가치에 두고 연구하는 불자와 수행과 기도를 중요시 하는 불자가 있는데 이 두 부류 간의 거리가 어떻게 하면 좁혀질 수 있는지'의 문제를 다루었다. 수행과 기도를 중요시 하는 불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그저 학문이나 철학으로 공부하는 '엉터리 불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논문을 통해 그리고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 같은 불자도 불자임을 재확인했다.

또 하나의 큰 공부는 동시통역 부스에서 얻은 경험이다. 말하는 사람 옆에서 그의 말을 다 들은 후 통역을 하는 순차통역은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그에 비해 동시통역은 헤드셋을 쓰고, 발표자가 연속해서 하는 말을 들으며 그 즉시 통역을 하고, 발표자의 말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종이에 적어가며, 한 가지를 더한다면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비슷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안이비설신의가 제각기 그러나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일이다. 늘 해보고 싶었던 동시통역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그 스트레스와 매력이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까짓 것 왜 못해? 그저 따라 읽으면 될 뿐인데 어려울 게 뭐가 있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무턱대고 읽는 것이 아니다. 발표자의 말을 잘 들으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적절히 축약해서 전달하는 순발력이 관건인 것 같다. 나의 버킷 리스트에 있는 하나를 실행했다. 나로서는 잘 했는지 못 했는지는 이차적인 문제다. 그저 동시통역을 해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다. 적어도 이번에는 그렇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놓인 거리가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좁혀졌다는 생각에 나는 만족한다. 앞으로는 보다 정확한 통역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물론 하면서 나의 통번역 동지들과 다음을 기약하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임무가 있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한국 재가불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어서 문화행사의 밤에 찬불가를 부르는 일이었다. 연습 시간도 적었고, 서로 처음 보는 불자들과 다수의 아마추어들 그리고 합창이 처음인 이들이 모여서 실력은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세계 불자들에게 한국의 찬불가를 소개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뭉쳤다. 달구지를 탄 듯 힘겹게 천천히, 그러나 나름 각자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에 섰고 모두가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제15차 샤카디타 홍콩 대회는 나에게 가르침을 한 아름 선사했다. 통번역과 합창 준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소중한 공부를 했다.

샤카디타, 부처님의 딸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마음을 공유한 열흘이었다. 이번에 만들어진 인연들, 알게 모르게 묵묵히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여러분 훌륭했어요!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