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살아있는 불교 (글: 조은수)

요즘 나는 점점 경전과 논서를 읽고 논문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에서 떠나 불교가 나의 삶과 좀더 관련을 맺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가면서 생각이 바뀐 탓도 있지만, 요즘 한국에서 일반 대중에게서 불교가 외면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 원인의 일부는 자신들의 세계를 굳건히 하고 대중과 유리된다는 그 무릅쓰고 첨예한 교학과 이론을 만들기에 지나치게 몰두하였던 불교학자들의 탓이라는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번 11월 3일 열릴 학술토론회의 포커스는 그래서 일상에서의 체험과 경험에 기반한 여성불교에 두고 있다. 불교적인 사유를 통해 현재 우리의 삶과 이웃의 삶을 바꿀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붓다도 이론 보다 실질적으로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실용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017년 겨울에 나는 인도 뭄바이 근교에 있는 고엥카 비파사나 명상센터에서 열흘간의 코스를 끝낸 후 그 명상센터에 부속된 전시관을 들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부처님의 일생을 대형 사이즈의 연작 그림 50여점으로 그려서 전시해 놓았다. 그 전시를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부처님이 <불교개론>을 강의하시면서 다니신 것처럼,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삼법인, 사성제, 12연기 식으로 정형화된 암기과목처럼 읊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화폭 속에 그려진 붓다는 먼지와 흙으로 뒤덮인 길을 걸어 마을로 들어가 그곳에서 남녀, 귀족, 천민을 가리지 않고 각종 계층의 사람들과 만나고 있었다. 병에 걸린 채 마을 밖에 버려져 깜깜한 밤에 공포에 질려있는 사람의 모습, 아이와 가족을 잃고 미쳐서 나체로 마을을 돌아다니던 파타차라를 보고 숄을 둘러 감싸주고는 말을 건네는 붓다의 그림을 보면서, 그 당시의 모습이 새로운 모습의 상상으로 다가왔다. 그 새로운 모습의 붓다는 인생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달래주고 나아가 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그 대화 속에는 부처님의 크나큰 연민과 자비의 마음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아마 이런 교설들, 실제적인 하나하나의 사례를 통해 초기 불교의 사상이 점차 형성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살아있는 불교가 중요하다.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남을 살피게 하는, 삶의 태도를 바꾸어주는 그런 강력한 가르침이 불교라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이 불교에 주목하는 것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 담긴 평화와 공생의 윤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자비심이다. 자비심과 연민을 함께 나누는 도반들과 이 길을 같이 나아가고자 한다.

 


조은수(趙恩秀)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철학을 담당하는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시건대학교 아시아언어문화학과에서 조교수를 역임하였고 2004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한국불교철학, 불교윤리학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2013~2015년 불교학연구회 회장, 2017년 서울대 여교수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불교여성개발원 산하 불교여성연구소 소장과, 샤카디타 코리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