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북한의 사찰 제1호; 금강산 신계사(神溪寺) – 글: 유정스님

글: 유정(전국비구니회 교육국장)

언제나 누구에게나 우리의 가슴에 어느덧 ‘그리운’이 자연스럽게 붙어버린 금강산, 한때는 직접 찾아가 볼 수 있는 관광지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보면 언제 우리가 편하게 다시 그곳에 갈 수 있을까?

옛 어른 스님들의 행장을 읽다 보면, ‘금강산 ** 사찰’에서 수행하셨다는 내용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 예로, 일제강점기 봉은사 조실이셨던 한암스님(漢巖, 1876-1951)은 금강산 장안사에서 행름선사를 모시고 수행하다가 신계사 보운강회에서 공부한 후 보조국사의 『수심결 修心訣』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또 전강스님(田岡, 1989-1975)은 1923년 즈음 금강산 지장암에 머물던 한암스님을 찾아 탁마했다. 뿐만 아니라 벽암스님(碧巖, 1837-1911)은 57세에 금강산 유점사에 들어가 만일염불회의 화주가 되어 염불회를 증흥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한편 우리와 멀지 않은 시기 여러 어른스님들의 수행장면에는 금강산의 여러 암자 중 유독 신계사가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지난해에 입적하신 혜해 노스님이 출가하신 사찰로도 알려진 신계사가 민주화추진협의회(民主化推進協議會: 약칭 ‘민추협)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왠지 모를 서기가 어린 듯한 신계사를 찾는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의 e-뮤지엄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흑백사진을 보자. 고맙게도 e-뮤지엄에서는 한국사와 관련된 흑백사진들을 많이 모아서, 원하는 이에게 그 목적만 잘 기입하면 무료로 다운 받아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신계사는 외금강의 옥류계곡에 위치한다.

 

금강산 외금강에 자리한 신계사는 예전에 31본산으로 나뉠 때, 그중의 하나인 유점사의 말사였다. ‘新戒寺’, ‘新溪寺’로도 표기한다. 519년(신라 법흥왕 6)에 보운조사(普雲祖師)가 창건하였다. 소재지는 강원도 고성군(고산군) 외금강면 창대리 금강산이다.

다음 사진은 신계사 복원이 결정되자, 직접 신계사에 가서 복원하는 일에 3년여 기간 동안 정성을 기울이셨던 경주 흥륜사 혜해노스님께서 복원 당시 옥류바위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이다. 당시 노스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함께 했던 상제 구화스님이 제공해 주었다.

신계사 복원 불사 현장에 선 혜해 노스님

금강산 산행 중에 (사진제공 구화스님)

이때 혜해 노스님의 세수는 82세, 구화스님은 40대였을 때이다.

두 분이 법기암으로 산행을 나섰다. 가을 금강산, 산죽이 낙엽들 사이로 푸르게 푸른 것이 남한의 산천과 다를 바 없지만 …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듭했으며, 1922년 이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8년 3월 14일 ‘금강산 문화재 복원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한 후, 남측에서는 ‘금강산신계사복원추진위원회(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북측에서는 ‘조선불교도연맹’이 공동으로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2007년 10월 13일 준공식을 봉행했다. 현재는 북측에서 관리하고 있다.

2007년 마침내 복원이 완성되고, 그 모습이 드러났다.

복원된 금강산 신계사 (사진제공 민추협)

위의 사진을 관리하는 민추협에서는 전국비구회와 관련이 있는 사캬디타 코리아의 계간지에 싣고 싶다고 하자, 아래 사진들과 함께 허락해 주었다. 뒤에 옥류바위가 병풍처럼 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면에서 본 신계사

초가을의 고즈넉한 신계사 (사진제공 민추협)

그리고, e-뮤지엄에서 내려받은 필자 미상의 금강산 10폭 병풍도도 함께 소개한다.

… 이렇게 금강산은 수행하기 좋은 명산이었고, 금강산이 품고 있는 여러 사찰 중에 하나인 신계사가 복원되어 우리에게 다시금 수행을 다지게 한다.

 

참고자료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국립중앙박물관

민주화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