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은희 (샤카디타 코리아 편집위원장)
화창한 봄날 서울역 근처에 있는 가톨릭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갔다. 가톨릭 박물관에서 화엄사 괘불을 전시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화엄사 괘불은 2021년 2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디지털 화면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 동안 살면서 서울역 앞을 수없이 다녔지만 부근에 가톨릭 역사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물어보니 2019년에 개관하였단다.
보통 사찰의 괘불을 외부에서 친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국립중앙박물관조차 힘들게 전시를 하는 실정이라 이 박물관 큐레이터의 능력이 굉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박물관은 외부에서 보기에는 좀 황당했다. 대개 과거에 지은 가톨릭 성당들이 외관상 높은 위용을 자랑하는데 중점을 두지만 이 박물관은 높은 빌딩 속에서 높이를 자랑하기보다는 지상은 공원으로 남기고 박물관은 지하로 들어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화엄사 괘불과 함께 ‘공’을 주제로 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었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공’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전시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시물과 함께 감명 받은 것은 박물관 자체이다. 이 박물관은 조선시대 이 자리에서 순교한 천주교인을 기념하는 박물관이지만 사실 관련 ‘유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으로 이 박물관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상설 전시관에는 어릴 때 국사 교과서에서 배웠던 조선 후기 사상의 흐름에 대한 책들을 전시를 하고 있다. 성리학, 실학, 동학, 그리고 천주교 관련 책들 – 『삼강행실록』, 『율곡집』, 『송자대전』, 『경세유표』, 『성호집』, 『반계수록』, 『지봉유설』, 『정감록』, 『동경대전』, 『기해년일기』 등 이름만 듣고 외웠던 책들의 실물을 보니 반가웠다.
또한 박물관 중앙에 자리한 ‘CONSOLATION HALL’은 정말 인상 깊다.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여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인 것 같다. 박물관이 단순한 지식을 얻는 장소가 아니라 위안을 받는 곳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 홀에서는 미황사와 대흥사의 하루가 연속적으로 보여지고 있었는데 사면에 비치는 아름다운 사찰의 모습이 매우 압권이었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과 불교중앙박물관도 디지털 영상들을 전시에 도입하고 있지만 이 박물관은 아예 건축 때부터 준비를 한 것 같다.
수많은 보석 같은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불교계도 많은 보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나눌 것인가를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