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차 샤카디타 대회의 주제에 대한 단상 – 글: 조은수

글: 조은수(샤카디타 코리아 공동대표,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내년 2023년 6월 23일 부터 닷새간 서울에서 제 18차 <샤카디타 세계여성불자대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샤카디타 코리아>가 호스트가 되어서 치러질 이 잔치에서는, 논문 발표, 워크숍, 전시, 명상, 문화공연 등 각종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될 것입니다.

샤카디타 본부에서 발표한 대회의 주제는 “Living in a Precarious World: Impermanence, Resilience, Awakening”입니다. 이 주제의 내용과 연관해서 저의 최근 경험을 소개하면서 나름의 해석을 가해보겠습니다. 지난 3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학회(AAS)에 논문 발표차 갔을 때였습니다. 간 김에 1987년 샤카디타 설립의 주체였으며 오랫동안 회장으로 봉직하면서 샤카디타를 실질적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키운 카르마 렉세 쏘모 스님을 만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스님은 오래 봉직하던 캘리포니아 소재 작은 카톨릭 재단 대학인 샌디에고 대학에서 은퇴를 앞두고, 올해 고향인 호놀룰루로 돌아와 <라이Lai 평화센터>라는 이름의 작은 처소를 지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내에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미리 이메일로 약속을 한 대로, 알려주신 주소에 도착해서 한참 기다려도 스님이 안 오시는 겁니다. 그날 따라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몸은 완전히 젖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핸드폰으로 국제전화를 걸었죠. 잘못된 주소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장소를 정하고 그곳까지 또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한 삼십분 기다리니까, 붕붕 소리를 내면서 20년은 더 되었을 낡은 빨간 프라이드 자동차에 탄 스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근처 타이 식당에서 채식으로 점심을 나누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옛날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1944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로 78세입니다. 2002년에 처음 뵈었으니 지금까지 20년 넘게 긴 시간 동안 이어온 오랜 인연입니다.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감회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긴 시간에 비해, 정확한 시간을 요구하는 약속이 지니는 유한성에 대한 생각도 공유했지요. 우리가 인생에서 경험하는 사건과 또는 시간에 대한 기억은 얼마나 착오와 오류가 많은지, 한참 웃으면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내년 샤카디타 대회의 주제로 “precarious world”라는 말이 공지되었을 때 얼마나 공감하였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일까요. 우리는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걸어가듯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든든하고 믿을만한 것이라는 생각은 깨어진지 오래입니다. 지난 3년간 우리 곁을 맴돌고 있는 코비드 뿐만이 아니라, 아무런 예고 없이 급습하는 산불과 홍수 등의 자연 재해 속에서 우리는 이 문명과 세계가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해주거나 영원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아프게 절감하였습니다. 세상은 정말 “impermanent”, 즉 “무상(無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 무상, 무아를 설하시면서, 단견(斷見), 또는 허무주의를 경계하셨습니다. 『유마경』 속에서 유마거사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은 무상하지만 그렇다고 삶을 혐오해서는 안된다고요. 이 시대에 다시 되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 또는 우리 존재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의 고유한 성찰 내지 통찰을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무상성을 본질로 하는 허망한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꿋꿋하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재난과 질병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유한성의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깨달음일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논문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여러 가지 성찰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상의 재난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지적하는 논문을 쓸 수도 있을 것이고요, 또 한편 자신의 유한성과 세계의 무상성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 어떻게 더 성숙한 세계관을 갖게 되었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겠습니다. 이전보다 더 강해진 우리 자신의 적응력과 끈기를 통해서 나뿐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그러한 지혜를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성찰을 보여주어도 좋겠습니다. 결국 세계의 무상성과 개인의 삶의 위기를 경험한 이후 우리가 얻게 된 결론은, 우리는 서로의 도움과 상생을 통함으로써만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그 미래가 희미하고 위기의 전망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더 소중한 요즘입니다.

 

◆ 제18차 샤카디타 세계여성불자대회 논문발표 및 워크숍 제안서 모집(2022.8.15.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