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은희(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
방송계와 시청자들 사이에는 항상 갑을 관계가 존재한다. 과거에 시청자들은 원하는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항상 정해진 방송 시간에 TV 앞에 앉아야 했었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가 방송되던 시간에 길거리에 차도 다니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방송 시간을 놓친 시청자들을 위해 방송국은 은총을 내리듯이 재방송을 해주곤 했었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같은 OTT나 유튜브가 대세인 요즘, 영상 제작자들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유튜브 영상 중에서 시청자들에게 선택받기를 갈구하는 ‘을’이 되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OTT의 등장으로 한국의 영상물들은 갑자기 유명해졌고 방송 제작자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는 기본적으로 내용 전개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영상미도 매우 중요한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된 요즘 도시의 모습은 어느 도시나 비슷하다. 높은 빌딩과 수 많은 자동차들을 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 모습은 서양인들에게는 너무나 지겨운 풍경이다. 결국 한국의 영상 제작자들은 외국인들에게 새로운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모토 아래 오늘도 산으로 들로, 지방 곳곳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산업화 시기에 우리는 우리 전통문화보다는 서양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향유하였다. 서양을 따라 잡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체절명의 명제 아래 문화마저 서양의 문화에 매몰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어 우리 문화가 수출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계는 차별화를 위해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전통문화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한국불교, 국악, 민화 , 한식, 사찰음식 등이 재발굴되고 있는데 문화 제작자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로 재발굴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최근에 가장 핫한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방영되었으며 좋은 평가와 인기를 얻었다. 제13, 14화에서는 황지사라는 가상의 사찰이 등장하고 ‘사찰문화재 관람료’라는 논란이 많은 주제를 다루었다. 나름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종단 이름과 사찰명이 가상이고 스님들의 복식도 현실 승복과는 다르게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제14화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들이 황지사를 방문하여 스님들과 차담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기겁을 했다.
주지스님과 주인공들이 ‘대웅전’ 안에서 찻상을 놓고 차담을 나누고 있었다. 보통 불자라면 대웅전 안에서는 떠들지 말아야하고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대웅전은 부처님의 집이지 신도들이 노니는 곳이 아니다. 불교가 전래 된 초기에 ‘금당’에는 지위가 높은 스님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긴 기도시간 때문에 생수병으로 목을 축이는 정도는 어느 정도 용인되지만 정식으로 찻상을 놓고 다과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대웅전 안에서 정식으로 상을 펴고 먹는 존재는 불보살님들과 영가뿐이다. 한국불교의 어느 종단이라도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 황당한 장면이 나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원고를 잘 썼는데 촬영지(야외 장면은 제주 관음사에서 촬영하였지만 대웅전 장면은 관음사가 아니다.)인 사찰에 장면이 좋게 나올 넓은 다실이 미흡했거나 PD가 너무 시각적으로 잘 나올 장소를 고집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는지 시청자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현장 최고 의사결정자인 PD가 불교에 대해 몰랐거나 아예 종교적 상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라도 교회나 성당 안에서 찻상 놓고 담화를 나누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방영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의 시청자들은 한국불교를 모르고 아마도 대부분 한국 드라마를 통해서 한국불교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굳이 한국 불교에 대해 책을 찾아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서는 대웅전 안에서 음식을 먹는구나하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장면을 보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 불자들도 놀랐을 것이다. 드라마의 힘은 몇 권의 책보다 영향력이 세다.
최근에 불교 문화는 아니지만 한국전통건축에 대한 ‘방송 대참사’가 있었다. ‘조선팝 어게인’이란 프로그램에서 배경 화면에 조선의 건축물이 아니라 일본의 건축물 이미지를 쓴 것이다. 미술감독이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기성의 이미지 상품을 구매해서 사용한 것인데 미술감독이 한국전통건축과 일본전통건축의 차이점을 알았다면 엉뚱한 이미지를 사는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팝’ 프로그램에 일본 건축이라… 대참사였다. 결국 제작진들이 사과를 했다.
또 하나의 OTT인 애플 tv에서 ’파친코‘라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재일한국인들의 이야기인데 고증을 위해 많은 역사학자, 복식학자들에게 검증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1930년대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먹던 김치의 종류까지 재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방송계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는 불자들도 적극적으로 한국의 불교 문화를 알릴 시도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감시자’가 아니라 ‘조언자’로서 점점 탈종교화되는 한국사회에서 ‘수행의 불교’와 함께 ‘문화로서의 불교’에 대한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