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한울(샤카디타 코리아 사무국장)
“붓다의 딸들”이라는 뜻의 “샤카디타”는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세계평화를 도모하고, 불교여성의 국제간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세계의 서로 다른 불교 전통 간의 조화와 이해를 촉진하고, 인류의 이익을 위한 자비로운 사회적 행동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1987년 1월, 인도 보드가야에서 열린 제1차 국제대회 이후 36년만인 2023년 6월, 한국 서울에서 제18차 대회가 개최되었다. 2년마다 개최되는 샤카디타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성황리에 종료하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먼저 지난 2021년 1월 14일, 샤카디타 인터내셔널에 대회의 한국 유치 의사를 전달하였다. 우리나라 외에도 두어 국가가 개최 의사를 밝혔다고 들었기에 한국 개최의 장점을 어필하는 데에 주력했다. 샤카디타 코리아가 설립되고 10여 년 동안 국제 리더십 양성에 힘써온 결과 인력풀이 탄탄한 점, 그리고 지난 2004년 제8차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한 후 샤카디타 대회가 더욱 견고해진 점을 비추어 보았을 때 2023년 제18차 서울대회 개최를 통해 또다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2021년 6월에 개최 예정이었던 제17차 말레이시아대회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고 같은 해 12월 27~29일, 제17차 대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누구나 등록비만 납부하면 비행기나 숙소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공간을 뛰어넘어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논문이나 워크숍 발표를 듣는 것 외에는 서로 소통하기 어렵다는 온라인 대회의 한계에 부딪혔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면 개최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던 온라인 폐막식에서 제18차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고, 오랫동안 샤카디타 코리아의 공동대표를 맡아온 본각스님과 조은수 교수님이 한국대회 유치를 수락하였다.
이듬해인 2022년 6월, 대회 주제가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 있기”로 결정되어 논문과 워크숍 제안서 모집 공고가 발표되었다. 마감일인 8월 15일까지 예상보다 많은 논문이 접수되어 일부 제안서는 워크숍이나 포스터 발표로 돌리는 등 분주했다. 선정된 사람은 연말까지 완성된 논문을 제출하도록 명시했다. 대회 주제 설정과 논문/워크숍 제안서 선정 및 배치는 샤카디타 본부의 학술위원회의 일이다. 이즈음 한국에서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대회 날짜와 예산 확보, 장소 선정, 프로그램 구성, 홍보 계획, 홈페이지 개통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워크숍 안내문과 논문 번역을 위한 번역팀이 꾸려졌고, 불교영어 통·번역가 양성을 위한 G.E.P. 8기 모집이 시작되었다. 샤카디타 본부 임원으로 구성된 ICPC (International Conference Program Committee)와 한국 조직위원회 임원으로 구성된 KCPC (Korean Conference Planning Committee)는 한 달에 한 번씩 온라인 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2023년 1월, 대회 홈페이지가 열리면서 등록이 개시되었다. 사전등록, 정규등록, 현장등록 등 등록시기별로, 출가자와 재가자 등 신분별로, 내국인과 외국인 등 국적별로 등록비가 다르고, 이에 더해 20명 이상 단체등록 시에는 할인혜택을 부여하는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서 매우 복잡했다.
게다가 자원봉사자도 등록비를 받아야 하는가 대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한 결과, 조직위원회를 비롯하여 자원봉사자 등 모든 참가자는 등록비를 납부하고 정식 등록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와 같은 대회 대소사를 결정하기 위해 무수한 회의를 거쳐야 했다. 켜켜이 쌓인 회의록을 들여다보면 그 때 당시의 온갖 고뇌가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2023년 2월부터는 대회 운영을 위한 틀이 잡혀갔다. 처음엔 얼기설기 뼈대를 맞추어 두었다면 본격적으로 살을 붙여가는 단계였다. 큰 프로그램 안에 세부 내용을 하나씩 정해갔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할지 매일 고심하고 번복하고 지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나날이었다. 조직위원회 분과별로 매주 회의를 열고 기획하는 일에 집중했다. 19년 전 제8차 한국대회의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그때와는 달라진 상황에 당황하기도 했다. 마치 큰 도화지에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함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는 방법도 재료도 생각도 다 다른 것 같았지만 세계에서 모이는 부처님의 딸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똑같은 목표 하나만을 가지고 각자 맡은 구역을 열심히 채워나갔다.
그동안 다른 나라에서 열렸던 대회에 참가해봤을 때는 몰랐던 사실 중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여권의 힘이다. 인도대회, 인도네시아대회, 홍콩대회, 호주대회 등 우리가 다른 나라 대회에 참가할 때에는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몰랐는데, 이번 대회에 참가하려는 베트남, 스리랑카, 미얀마, 인도, 부탄, 몽골 등의 참가자는 모두 비자를 받아야 했다. 신원보증서와 대회 초청장을 포함한 모든 서류를 공증받아야 하는 나라도 있었다. DHL로 관련 서류를 보내면 참가자가 직접 한국 대사관에 신청을 해야 했다. 그러면 최소한 한 달 이후 비자발급을 위한 면접을 보게 되고, 또 1~2주를 기다려야 비자가 발급되는지 거부되는지 알 수 있었다.
각국 한국대사관에 협조 요청을 위한 공문도 보내고 메일도 쓰고 국제전화도 수도 없이 걸었지만 결국 비자를 받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이번 대회를 정부 여러 부처와 기관에서 후원해 주었으니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외국인 참가자를 환영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의 경제상황이나 출가자로서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스님들은 통장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있더라도 최근 6개월간의 통장거래내역이 필요하다. 가정주부인 재가불자의 경우 일정 직업이 없어서 비자가 거부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에 입국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보니 수상한 연락도 많았지만 조은수 교수님의 내공으로 걸러낼 수 있었다. 한 번은 우리 조직위원회에서 발급한 서류인 것처럼 위조한 사건도 발생했는데, 누가 봐도 위조한 것이 틀림없어서 대사관측에서 사건 접수하였다고 들었다. 이 사람은 장장 6개월 동안 이름을 교묘히 바꿔가며 비자서류를 요구한 사람이었다.
대회 개최가 임박하여 회의에서 활자로 상상해보았던 대회장이 실제로 꾸려지고 해외 참가자들이 입국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입국 전날 비자가 나온 참가자도 있었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이 사방으로 넓은 대회장을 북적거리는 곳으로 만들어주셨다. 자원봉사자 분들도 생업을 뒤로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손을 보태주셨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두지 못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빈곳을 채워준 자원봉사자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막막하다. 이번 대회에는 총 31개국에서 온 2,811명이 등록하였다. 이 중 511명이 사찰순례에 참가했다.
제18차 샤카디타 세계대회는 모든 분들의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운영되었다. 조직위원회는 물론 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단도 모두 봉사직이다. 지난 몇 년간 이 대회를 위해 시간과 정성과 노력과 체력을 아낌없이 내놓은 모든 분들에게 찬탄을 보낸다. 이 분들의 열정을 지켜보다보면 샤카디타의 매력이 과연 무엇이기에 하는 궁금증이 떠오른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일일까? 국적도 인종도 언어도 나이도 다르면서 같은 길을 걷는 것을 발견하는 일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이 문화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비교해보는 일일까?
우리는 샤카디타 세계대회에서 같은 추억을 쌓고 또다시 세계 곳곳으로 돌아가 일상생활과 수행을 열심히 하다가 또다시 2년 후 만나 같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우리 앞을 가로막은 문제 해결을 위해 또다시 머리를 맞댈 것이다. 다양한 구성원이 공유하는 경험이 많을수록 뛰어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 그 때 더욱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야기 거리를 잔뜩 준비해야겠다. 그때까지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