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요가를 만나다 – 글: 효석스님

요가를 시작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1996년에 인도 뿌나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한국과는 다른 기후 변화로 인해 인도는 나에게 낯설고 신기한 나라였고,언어장벽으로 학교생활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한 시간 수업을 녹음해 오면 두, 세 시간 테이프를 되돌려가며 필기를 해야 했다. 딱딱한 나무의자 위에서 허리가 틀어진 자세를 오래 유지한 결과로 인해 척추측만증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S라인이 되었다. 대층적인 S라인이 아닌 복붙 S라인이 되었다. 골반과 척추가 틀어지고, 다리 길이는 짝짝이, 허리는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로 인해 밤이면 찾아오는 좌골신경통 통증은 그레잇이었다.

인도 정형외과에서 언뜻 보기에는 고문 기계같이 생긴 기계로 물리치료를 시작했고, 의사선생님께서 너무 아프면 한 알씩만 먹으라는 진통제를 하루에 세 알씩 먹었다. 그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끝까지 해야 한다는 나의 천성적인 성격은 유학을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한번 시작하면 무슨 일이든 끝까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나의 성격은 미련한 곰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했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여하튼 나는 그런 성격으로 인해 고생 아닌 생고생을 했다. 뿌나대학 석사과정 기말시험을 모두 끝낸 후에 한국으로 들어와 3개월 동안 온갖 한방 치료와 무면허 민간치료를 시작했다.

나의 어머니보살님은 몸에 칼을 대는 서양의학에 심한 불신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변두리 정형외과병원의 의사선생님은 나의 복붙 S라인의 허리는 어려서부터 형성된 것이라 수술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의사선생님의 근엄한 얼굴에 대고 나는 ‘아닌데요...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됐는데요.’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허리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것 같이 말하는 의사선생님의 근엄한 얼굴에 나는 불신의 그림자를 던졌다. 서양의학에 대한 어머니보살님의 평소의 불신과 변두리 정형외과 의사선생님의 확신에 찬 진단 결과에 대한 나의 불신은 자연치유를 선택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3개월 동안 무면허 카이로프라틱 치료를 받았다. 그 후 나는 인도로 다시 돌아왔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학업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붙 S라인의 허리를 갖고 나는 박사과정에 등록해 5년을 보냈고, 박사학위를 제출하고 난 후에야 드디어 까이발야담 요가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요가’를 만났다.

요가는 크게 기본적으로 세 그룹의 자세로 나누어진다. 명상자세, 교정자세, 이완자세이다. 요가를 통해 나는 본격적으로 나의 허리 교정치료를 시작했다.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어서 처음에는 요가 동작을 전혀 따라하지 못했다. 아사나(요가동작) 실습이 아침에 1시간 30분 저녁에 1시간 30분씩 하루에 총 3시간씩 있었다. 꾸준하게 1년을 수련한 결과 틀어졌던 척추가 서서히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요가수련은 내 몸을 치료하는 감사한 시간이다. 출가한 이후에도 신도보살님들과 요가 수련을 계속 했고, 지금은 학인스님들과 함께 요가 수련을 한다. 요가(yoga)는 ‘(신과의) 결합’을 의미하는 'yuj'에서 나왔다. 파탄잘리 요가 경전에서 ‘요가’라는 말은 ‘마음작용을 멈추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몸 수련을 통해 마음의 번뇌를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요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몸만을 수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몸 안에 들어있는 마음까지 수련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출가하시고 처음에 요가수행을 하셨다. 그 수행을 바탕으로 6년 고행을 하셨으며 마침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다. 우리도 부처님의 수행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 요가수련을 시작으로 깨달음의 완성까지 가보는 거다. 한 동작 한 동작 부처님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열심히 수련해 보자. 이번 생에 성불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END

글쓴이: 효석스님(봉녕사승가대학 교수사/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