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은 (샤카디타 코리아 공동대표 직무대행)
제16차 샤카디타 호주대회에 선발대로 우리 4명(민우스님, 조은수, 정형은, 이영희)은 사찰음식시연자로 초청받은 정관스님을 모시고 함께 지난 6월 20일 호주 공항에 도착했다. 음식물 반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호주의 입국심사 때문에 긴장했지만 애써 당당한 표정을 짓고 줄을 섰다. 호주 입국심사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스님들에게 드릴 김과 고추장을 소지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신고를 하니 문제없이 통과했다. 입국 게이트를 나오니 호주 자원봉사자들이 도착하는 참가자들을 환영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더구나 샤카디타대회의 오랜 친구이자 작년의 한국에서 열린 학술토론회 때 한국을 방문했던 프랑스 사진작가 올리비에 아담이 나와서 반가운 얼굴로 맞아 주어 즐거운 해후를 가졌다. 낯선 곳에서 반겨주는 친구들의 활짝 웃는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긴장을 풀어주고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는 시드니 공항에서 차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블루마운틴까지 한시간 반 달려서 마침내 호텔에 도착했다. 짐도 풀지 못하고 곧바로 대회장으로 갔다. 테이블과 의자를 옮기고 자료가 담긴 박스를 옮기고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이름표와 기념품 가방을 정리하는 등 할 일이 태산이었다. 호주측 봉사자가 주도를 하는 건지 우리 한국 봉사자팀이 주도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손이 이처럼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점에 좋아해야 할지 황당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그렇게 몇 시간을 바쁘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데 벌써 태국 스님들의 팀이 도착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것이다. 그렇게 21일부터 30일까지 통역, 번역, 안내 등등 …. 돌이켜 보면 몇가지 역할을 했는지 일일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한국 봉사자팀은 낯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대회 기간 동안 줄곧 블루마운틴 페어몬트 호텔에만 있고 대회 후 간단한 투어만 하고 돌아왔으니 호주에 갔다온 것 같지가 않다. 다만 어느 봉사자의 말을 인용해서 표현 하자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보람 있었던” 열흘이었다. 거기다 나는 샤카디타 코리아 공동대표 직무대행이라는 막중한 일을 맡아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지냈다. 원래 고지식한 성격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는 긴장감으로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 봉사자들 간에 손발이 척척 맞는 환상의 팀워크를 경험해서 보람되고 친절한 호주 측 준비위원회와 그리고 여러 나라의 불자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어 즐거웠다. 함께 봉사하면서 엿본 호주인들의 삶에는 한국인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우리는 급하고 빠르고 그들은 하루에 한가지씩 해결해 나가며 여유로웠다.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랄까?
28개국에서 온 참가자 803명의 남녀(남성불자는 전체의 1%가 될까?) 불자. 논문 발표에 집중하여 경청하는 참가자들, 세상을 향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나온 승가 재가 발표자들 모두가 진지하고 하나가 되었다. 미투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전에 맞서 어렵게 만들어낸 변화와 치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논한다. 그 한 구석에 내가 있다. 숙연해진다. 갈등과 편견을 없애고 젠더의 평등, 다양한 불교 전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1987년에 불과 30여 명이 시작한 샤카디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삭발한 여성 출가자가 이렇게 많이 모이는 광경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우리 한국불교는 대한불교 조계종, 원불교, 태고종, 어른스님들과 젊은 스님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시니 한국인 불자의 하나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국가별 염불 시간에는 우리 한국 스님들의 모습이 단연 돋보였고 회의장의 모든 시선이 우리 스님들에게로 모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샤카디타 코리아의 공동대표이신 본각스님의 지휘 하에 수십명의 비구니스님들이 한몸처럼 절도 있고 당당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국의 비구니스님들이 오랜 불교 전통 속에서 얼마나 잘 수행해 오셨는지를 세계에 그대로 보여준다고 느꼈다. 자랑스러웠다. 나도 이분들과 같은 한국인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아쉽다면 출가자와 재가자를 막론하고 남성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점이다. 젠더간에 갈등과 차별을 지양하고 화합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이루자는 것이 본 모임의 취지가 아닌가? 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들 중에는 다음 대회에서 각국 스님들 간의 자유로운 정보와 의견 교환을 위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세계 불교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스님들이 모여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국경없는 스님들’이란 모토를 외치면 어떨까?
오전 논문 발표장에서의 진지한 모습에 이어 다양한 오후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더불어 미소짓게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표정들이다. 동양인, 서양인, 승가 재가가 한데 어우러진 밝고 맑은 얼굴들이 장관이다.
현장에서 활동한 봉사자들 외에 그런 대회가 가능하도록 도운 숨은 조력자들이 있다. 영어 논문들을 한글로 번역해서 자료집을 만드는 일은 전부 번역 봉사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스님들을 비롯하여 통역, 번역, 안내 봉사를 한 23명의 이름을 한번쯤은 불러보고 싶다.
민우스님, 시현스님, 유정스님, 효석스님, 권내영, 김은경, 김은희, 김한울, 김희정, 박진선, 신미아, 안미경, 안지숙, 안환기, 원혜영, 이선아, 이영희, 이현숙, 전영숙, 정형은, 조은수, 조정희. (존칭생략, 가나다 순) 그리고 호주 캔버라에서 날라와 우리의 사무국장인 김한울 씨와 팀을 이루어서 참가자들의 안내뿐만 아니라 무대 뒷면의 영상실을 오가면서 갖가지 활약을 펼친 리나 콜레이라트 씨에게도 감사드린다.
논문 발표:
- 지광스님 – 한국에서 20년, 호주에서 20년 한국 비구니로 살아온 호주 스님 이야기(호주 스님)
- 유정스님 – 식차마나, 현대에도 필요한 제도일까(식차마나 제도의 중요성 제고)
- 유덕스님 – 출가자 수행 공동체에 대한 교육방안의 모색
- 황상원교무님 – 남북관계에서 원불교 여성의 역할: 과거 현재 미래 – 한반도에서의 샤카디타 여성불자의 미래 역할
논문 발표는 하루에 두 세션에 걸쳐 진행되었고 각 세션별로 다른 진행자가 사회를 봤는데 그 중 불교여성개발원의 전 원장인 김인숙 원장님과 샤코 공동대표인 조은수 교수님도 사회를 봤다.
조은수 교수는 샤카디타 인터네셔널의 부회장이자 이번 16차대회의 6인 조직위원회의 1인으로 학술위원회를 맡아 호주 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마무리 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뒤에서 일한 주역 중의 하나이다.
워크숍:
- 정관스님 – 한국 사찰 음식
- 정관스님 – 김치 퍼포먼스
- 이성전교무님과 황상원교무님 – 원만이 만들기
- 김계성교무님과 김수신교무님 – 태극권
- 범현스님 – 시드니 거주 출가여성을 위한 무종파 거주지가 필요한가(호주스님)
- 이영호 – 신생아 배냇저고리에 단추 달기
- 정서미 – 한국 다도
- 정형은 – 단편 영상: A Korean Buddhist Woman
- 경조스님 - 관음무
- 힐링코러스 – 한국 불교음악의 이해와 체험. 대회 오프닝 공연에서 합창, ‘문화의 밤’에서 합창과 태고종 스님들의 범패
영상:
- 봉녕사
- 운문사
포스터:
- 원혜영 - 아비다르마 텍스트에서 자궁의 5단계
- 힐링코러스
이번 제16차 대회에는 BTN불교방송국의 하경목 부장이 동행취재를 해서 풍부하고 현장감 넘치는 포토뉴스와 기사 11꼭지를 방송시간으로 총 30여 분을 내보냈다. 덕분에 샤카디타의 이름을 한국 불교계에 널리 알리게 되어 더욱 뜻깊은 대회가 되었다. 하부장님이 그동안 오래도록 취재 현장에서 사용했던 노트북이 이번 대회의 마지막 기사를 전송하고 숨을 거뒀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뉴스 보기: http://sakyadhita.kr/?p=7074]
많은 굿윌 봉사자들의 열정과 지혜로운 힘이 미래에도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아서 기대된다. 이것이 바로 여성의 임파워먼트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