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2019 샤카디타 호주대회 논문번역에 참여하면서 – 글: 김은희

김은희
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

몇 년 전부터 단지 영어를 읽고 이해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샤카디타에서 번역 봉사를 조금씩 하다가 이번 호주 대회를 맞이하여 대회에서 발표되는 몇몇 논문을 번역하고 윤문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기계적인 번역이 아니라 대회 참가자들의 생생한 경험과 감정을 바로 느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흔히 독서는 저자와의 대화라는 말을 한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저자가 주장하거나 느낀 점을 이해하고, 내 생각과 비교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을 해 보니 번역은 저자와 독서보다 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현대인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글을 접한다. 책뿐 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많은 글과 마주 친다. 그러나 그 많은 글자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그 글에 집중을 하며 읽을까? 그저 백화점 윈도우에서 아이쇼핑 하듯이 스쳐 지나가듯 글을 읽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았다. 일회용 화장지를 쓰듯 스쳐 가는 그 글들은 나에게 아무런 여운을 남기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번역을 하면서 마주한 글들은 번역이 끝난 한참 후에도 나의 기억에 남아 글쓴이의 삶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그들이 선택한 영어 단어의 한글 뜻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할까 고민하고 저자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을 과연 내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 하며 자신의 영어독해능력과 한글 실력을 한탄하게 했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나의 한계를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이상하게 번역을 해도 이것을 고쳐 줄 다른 봉사자들이 있다는데 안심을 하곤 했다. 나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준 다른 봉사자들에게 너무 고마웠고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동료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뛰어 내려도 나를 받아줄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과 비슷했다.

논문 내용 중에는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 불자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이번 대회가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이 일어난 직후에 열린 대회이기에 그런 주제의 글들도 있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마주 할 때마다 이렇게 수행 환경이 좋은 우리나라에 태어나서 이렇게 게으른 불자로 사는 것에 대해 많은 반성했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불교를 접하게 되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편의 논문번역이 끝날 때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저자들에게 어떤 형제애를 느끼곤 했다. 그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오랜 친구처럼 그들을 포옹하고 존경의 눈길을 보내고 싶었다. 그들을 직접 만나지 못해도 그들에 대한 기억은 오래 갈 것이다.

논문들을 번역하면서 시간에 쫓겨 스트레스도 받았고 내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기도 했지만 아마도 2년 후에는 또 다시 모니터 앞에서 단어들과 씨름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 같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