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는 현대인의 개인적인 삶이나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했습니다.
글: 아잔 브람 스님
번역: 이영희(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
원문 출처: https://bswa.org/teaching/buddhist-contribution-good-governance-e-book-ajahn-brahm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에 대한 불교의 기여
서문
승단(僧團)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국적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호주 서부 퍼스에 위치한 보디나야사원(Bodhinyana Monastery)의 경영책임자(managing director)이자 서부호주불자회(the Buddhist Society of Western Australia)의 ‘CEO’를 맡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 또한 ‘불교 굿 거버넌스(Buddhist Good Governance)’ 에 입각한 거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역자주: ‘Good Governance’는 정부, 민간기업, 시민사회가 조화롭게 참여하여 지구시민적 공감을 축으로 이루어지는 협치(協治)를 의미하는 용어. 따라서 ‘Buddhist Good Governance’는 불교적 이념에 기반한 협치를 의미)
불교는 세계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어 왔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지만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 내내 머리맡에 불상을 놓아 두었고, 처칠의 아내 클레멘타인은 자비의 화신인 관음상을 모셨다.
나는 불교 계율과 교리를 활용하여 아래 협치의 세 가지 현대적 범주에 대해서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지도 능력
2. 의사 결정
3. 문제 해결
1장 지도 능력
성공적인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a) 본보기를 통해서, (b) 권위를 가지고, (c) 친절함을 통해서.
1.1 본보기를 통해서 이끌기
위대한 정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그의 조국 인도를, 놀랄 만큼 거의 유혈사태 없이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가 가진 탁월한 지도력은 평생을 두고 발전된 것이며, 독립운동의 모든 서로 다른 분파 속에서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아주 필수적인 것이었다. 내 견해로, 그의 탁월한 지도력 중에서 가장 위대한 점은 자신의 본보기를 통해서 이끌어 주는 능력이었다.
간디가 젊은 시절 영국에서 법률을 공부할 때 평범한 하숙집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하숙집 여주인이 그에게 십대 아들 문제로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아들이 설탕을 너무 많이 먹는데 아무리 말려도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인도인 세입자 간디에게 경외감을 갖고 있으니 어쩌면 간디가 그녀의 아들에게 설탕을 많이 먹지 말라고 충고해 준다면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간디는 그녀의 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겠다고 답했다.
2 주일 후, 하숙집 부인은 아들이 여전히 설탕을 지나치게 먹고 있다면서 도대체 왜 여태 아들에게 말하지 않느냐고 간디에게 불평 했다. 그러자 간디는 이미 자신이 그녀의 아들에게 말했으며, 다만 그날 아침에 했다고 대답했다. 부인이 왜 아들에게 충고하는데 2 주일이나 기다렸냐고 물었다. 그러자 간디는 간디 자신부터 설탕 먹기를 끊어야 했는데 그것이 단지 어제였다고 대답했다.
스스로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처럼 하라고 요구하는 지도자는 성공할 것이다. 반면 다른 이들, 즉 위선적 지도자는 무시당할 것이다.
붓다는 분명하게 가르치셨다. 승단의 지도자들은 충분한 공덕과 수행 경험과 지혜(계율/건도/대건도: Vinaya/Khandaka/Mahavagga, Mv. 1.36-37)를 지니지 못했다면, 율사나 스승이 되면 절대 안 된다고 하셨고, 왕들은 반드시 덕이 있고 근면해야(전륜성왕사자후경/Cakkavatti-Sīhanāda Sutta, DN 26) 한다고 가르치셨다. 다시 말해서, 불교는 본보기를 통해 이끄는 것을 가장 칭찬하고 있다.
1.2 권위를 가진 지도력
권위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부여 받은 권위, 타고난 내재된 권위, 꾸며진 허위적 권위. 오직 앞의 두 개의 권위만이 합법성을 가지고 있어 지속 가능하다.
부여 받은 권위는 통치하도록 선출되는 곳에서 일어난다. 최초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그리스가 아니고, -대개 그리스라고 추정되지만- 인도에서 나왔음을 서양에서는 거의 아무도 모르고 있다. 붓다 재세 시, 즉 소크라테스 이전에, 베살리 주변(파트나(Patna) 맞은 편 갠지스강 북쪽 유역)을 중심으로 한, 바지안 공화국(Vajjian Republic)은 이미 오래 전에 민주주의가 확립된 국가였다. 협치의 모든 결정은 사바(Sabha/뉴델리의 현대 인도 의회의 현재 이름)라는, 공화 회의에 참석한 시민들의 합의로 이루어졌다. 지도자가 필요할 때, 예를 들어 군대나 재무부의 경우, 지도자는 시민에 의해 임명되었다. 만장일치로만 결정했고, 그것도 활발한 토론 후에, 소수자들이 논점을 인정하고 투표로 반대자들과 견해차이를 인정하나 다투지 않기로 하는데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 상가의 운영을 지배하는 규칙들이 이 오래된 민주적 모델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부여 받은 권위는 효과를 발휘하기 쉽다. 왜냐하면 속담에서 보다시피 권력은 타인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다.
내재적 권위는 어떤 사람이 명백하게 우월한 지식이나 특출한 능력 때문에, 권위를 갖는 것이 당연한 곳에서 나타난다. 승단에서 사찰의 장로들, 즉 오래 전 수계 받은 비구, 비구니 스님들은 그들의 수승한 경험 덕분에 내재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 또한 학식 있는 스님과 깊은 명상 즉 깨달음을 성취한 스님들도 그들의 개인적 성취 때문에 내재적 권위를 갖고 있다. 정부, 기업, 어떤 조직에서도, 오랜 시간 성공적으로 일해온 사람들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내재적인 권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될 것이다.
여기서 논의되는 세 번째 유형인, 꾸며진 허위적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단체가 힘이나 수완을 통해 자신을 위하여 통제하는 힘을 장악하는 곳에서 나타난다. 합법성이 논란 되기 때문에 그러한 권력은 항상 불안정하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복수의 손길은 폭군이 도망친 침대를 찾네. 철권이 독재자의 머리를 으깨고, 그 대신 폭군이 되네.” (역자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The Grey Monk’의 부분)
붓다 재세 시, 데바다따는 상가에 대해 권위를 행사하려고 시도했으나, 대개 그렇듯이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불교 상가의 지속과 힘은 부여 받은 권위와 내재적 권위의 조합인 지도력 때문에 결코 작지 않다. 비슷한 예로 초기 로마 제국의 힘권력은 지배 기구인 원로원에 있었는데, 부여 받은 권위와 내재적인 권위가 결합되어 있었다. 사실, 원로원 선출에 입후보한 로마 시민은 과거 그들의 오점 없는 행동에 대한 상징으로서 하얀색 옷을 입음으로써 내재적 권위를 주장했다. (밝은) 흰색에 대한 라틴어는 ‘candidus’인데, 여기에서 ‘후보자(candidate)‘, 즉 선거에 입후보한 사람이란 단어가 유래되었다. 후보자 가운데 통치 주체로 선출된 이들에게 권위가 부여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지도력은 사찰 규율을 통하여 부여 받은 권위와 내재된 권위가 잘 어우러진 것으로 본다. 당연히 꾸며진 허위적 권위를 가장 기피한다.
1.3 친철함을 통한 지도력
중국 황실 군대의 한 장군에게 황제는 다른 부대는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그 장군의 부하들은 그토록 완벽한 규율을 지키고 있는지 물었다. 장군이 대답하기를, 자신은 단지 병사들이 이미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라고 하기 때문에 장병들이 항상 복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우스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효과적인 지도력의 비밀을 드러내고 있다. 비밀은 바로 동기부여다. 그 장군의 부대는 장군에 의해 완벽하게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서, 장병들에게 오래 열심히 훈련하라고 말하면, 장병들은 이미 훈련하고 싶어 했다. 또 장군이 행군하라고 명령하면, 장병들은 행군하는 것을 좋아했고 장군이 생명을 걸고 전투에서 싸우라 명령하면, 그들은 싸움 속으로 돌진했다. 장병들은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완벽한 규율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유능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을 동기 부여하는 데 아주 능숙하다.
동기부여는 친절함을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이다. 불교와 현대 심리학 역시 공포와 분노(부정적 강화로 알려져 있는)를 이용해서 동기부여 하는 것은 단지 일시적 협조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분노를 야기시켜 결국 폭동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뿐임을 인식하고 있다. 친절함(긍정적 강화로 알려진)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동기부여하는 것은 더 느릴 수 있지만, 장기적인 헌신과 협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열 장비의 설치와 유지를 전문으로 하는 영국의 기술 회사인 패럴리 설비/기술관리자들은 회사에서 일체 초과근무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인도적인 전략 덕분에 이들은 베스트 기술 서비스 테크놀로지(the Best Engineering Services Technology)와 중소기업성취자(Small Business Achievers) 같은 기관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기업문화를 바꾼 후 2년 정도 지나자, 회사의 매출이 두 배가 되었고 이윤은 세 배가 되었으며, 직원들은 자신을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공은 관리자들이 친절함으로 이끌어 나갈 때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지도자는 선장이지, 팀원이 아니다. 지도자는 지네의 한 쌍의 앞발이다. 만약 나머지 49 쌍의 발이 따라오지 않는다면 지네는 아무 곳도 갈 수 없다. 친절함은 다른 사람 모두에게 따르라는 신호를 주는 강력한 힘이다. 붓다는 『꼬삼비경(Kosambiya Sutta)』 에서 비구들이 여럿이 있거나 혼자 있거나 신구의를 통해 친절함을 유지하면 그러한 친절이 조화와 화합을 만들어 낸다고 가르치셨다. 화합 없이는 진보도 없다. 그래서 불교는 친절함을 통한 지도력을 가장 칭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