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분노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이른바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의 일부분이다. 위험에 대처하는 투쟁-도피 반응은 자연 선택을 통해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온 정신생리학적 반응 체계이다. 예컨대 우리가 선사시대에 살고 있다면, 포식자나 경쟁자가 당장이라도 공격해올 것 같은 위험에 처했을 때 위협의 수준을 따져보고 맞서 싸울지 아니면 도망칠지를 결정할 것이다. 이때 싸우기로 결정하면 정서적으로 분노하는 반응이 일어나고, 도망치기로 결정하면 두려움이 생겨나는데 어느 쪽이든 우리 몸과 마음은 짧고 폭발적인 신체 활동에 대비하게 된다.
혈압과 심장 박동 지수가 상승하고, 소화 기능이 멈추며, 아드레날린 같은 각종 호르몬이 혈액에 분비되어 고통에 무뎌지고, 근육이 잔뜩 긴장하는 것이다. 이는 가만히 앉아서 참선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상태로 참선하려는 것은 겁에 질려 날뛰는 말의 고삐를 당기려는 것과 같다.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걱정이 되거나 두려울 때 혹은 초조할 때는 걸으면서 참선(행선)을 하는 편이 훨씬 더 쉽고 유익하다. 행선은 활동적인 참선, 즉 요중선에 속한다. 숙련된 참선 수행자들 중에도 앉아서나 누워서 하는 정중선은 치유와 안정을 위해서 하고, 요정선은 참선으로 집중력을 높여 일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화가 나거나 두려울 때 혹은 너무 흥분될 때 걸으면서 참선을 해보면 요중선에도 치 유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중선은 마음을 치유하고 차분하게 진정시킬 뿐만 아니라.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기운이 나게도 한다. 참선을 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하고 평화로워지는 동시에 정신이 초롱초롱해지고 활력이 생겨 행동에 나설 마음의 준비가 된다고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조용하거나 활동적이거나, 무관심하거나 열심이거나, 휴식 중이거나 활동 중이거나 둘 중 하나에만 해당하지 동시에 두 가지 상태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선이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선을 하면 행동하는 것과 가만히 있는 것이 공존할 수 없는 양극단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이고도 즉각적인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움직이는 것과 멈춰 있는 것, 말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골똘히 생각하는 것과 참선하는 것, 상황을 바꾸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 정반대 행위가 아님을 알게 된다. 참선을 하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경험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하는데 사용하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이분법은 착각에 불과하며, 더 나쁘게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움직이면서 도전할 수 있는 참선
걸으며 하는 참선, 즉 '행선'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행선 중에서도 아주 천천히 걸으면서, 걸어가는 행위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방식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앞으로 걸어갈 때 한쪽 발을 내미는 보폭과 발꿈치가 땅에 닿는 느낌, 체중이 발꿈치로 옮겨가면서 몸이 앞으로 나아가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는 느낌 등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걸으면서 참선을 할 때에는 그것이 걷는 행위 자체에 관한 명상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선은 걷기라는 신체 활동에 대해 사색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느리게 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전통 선방에서는 주로 50분간 앉아서 참선을 한 다음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스님들은 방 안에서 큰 원을 그리며 말없이 걷는다. 쉬는 시간에도 계속 참선을 하며 집중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쉬는 시간에는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과 문을 다 열어 놓고, 참선하던 사람들도 자유롭게 화장실에 가거나 다른 방에 가서 몸 푼다. 이렇게 휴식 시간을 갖는 목적은 단순히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재충전도 하려는 것이다. 여태 참선하느라 소모한 기력을 회복하고 앞으로 할 참선에 단단히 대비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휴식 시간에 방 안을 걸으면 발걸음이 가볍고 활기차진다. 행선은 모닝콜 혹은 경종 같은 것이다. 화가 나고 불안할 때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정을 다스린 다음에는 반드시 처음에 우리를 화나게 만든 그 문제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참선은 긴장을 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참선을 하면 오하려 정신을 아주 똑바로 차리고 현재에 집중하는 상태가 된다. 참선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두 눈과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현실로 뛰어드는 것이다. 참선은 조용한 가운데 몸과 마음을 다해 현실에 직접 참여한다는 점에서 몰입도가 높고 짜릿하다. 살아 있다는 것을 모든 감각으로 느낀다. 참선 초보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첫 번째 기술은 몸이 긴장하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하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참선의 탁월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정신은 다이아몬드 드릴처럼 예리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차분하고 평화롭다.
활동적인 참선을 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동안에 몸과 마음의 균형을 아주 섬세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신체 움직임을 여러 부분으로 나눠 천천히 걷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도 "이뮛고?“ 화두에 집중하며 정신적으로 전혀 흔들림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 방법을 배워보자.
참선과 걷기를 하나로
1. 바르게 서서 입선 자세를 취한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아랫배에 대는 차수 자세를 취해 보자. 배에 닿는 손의 압력이 걸을 때 집중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2. 앞쪽 땅바닥을 보며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3. 계속 ”이뭣고?“ 화두에 집중한다. 화두가 단전에 있다고 상상하자. 집안일을 하면서도, 갓난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을 때의 그 절박한 심정으로 의식을 집중하자. 의식의 일부는 항상 단전의 ”이뭣고?“를 향해야 한다. 단전에서 부피감이나 열기, 떨림 같은 것이 느껴질 수 있다. 바로 거기에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이 말이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다. 손과 배가 만나는 지점에 정신을 집중하고 걸으면서 속으로 침착하고 분명하게 ”이뭣고?“를 읊조리면 된다.
4. 호흡을 천천히 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호흡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따라가게 된다. 다만 숨이 찰 만큼 너무 빨리 걷지 않도록 주의하자.
5. 복식 호흡을 할 때 배가 들어갔다 나오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호흡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뭣고?“를 읊조리면서 아랫배 안쪽 공간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6. 이 때 등을 똑바로 펴고, 목과 어깨가 긴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집중하려 할 때 고개를 앞으로 내미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척추를 똑바로 세워 최대 한 길게 늘인다.
7. 걸으면서 참선의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동작을 유기적으로 해내는 것이 익숙해지면 조금 더 빨리 움직이려고 해보자. 양손을 내리고 자연스럽게 걸어도 된다.
행선을 할 때에는 근엄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여러 가지 작은 동작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마음 속으로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사실 행선은 현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멀티태스킹에 참선을 효과적으로 접목하는 방법을 배우는 첫 번째 과정이다.
위 글은 테오도르 준 박의 ‘참선 매뉴얼(2020년)’에서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발췌했다.
저자 테오도르 준 박은 미국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학사,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를 수료했다. 1990년에 한국으로 와서 송담스님의 제자로 인천 용화사에서 출가했다. 현재는 절에서 나와 자유로운 21세기의 수행자로 살며 한국과 미국에서 참선을 제대로 이해하고 일상에 접목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