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낄라 충걀빠 Dekila Chungyalpa
[세계 속 붓다의 딸 #11] 데낄라 충걀빠는 티베트 출신의 환경운동가로, 현재 위스콘신 메디슨 대학에서 설립한 '건강한 마음을 위한 센터(Center for Healthy Minds)의 담당관이다. 이 곳에서 '로카 이니셔티브(Loka Initiative)'라고 불리는 프로그램을 통해 종교 지도자와 기관을 위한 새롭고 혁신적인 교육을 맡고 있다. 종교 지도자 및 기관과 협력하여 환경 보호, 지속가능한 개발, 보건 활동 등 종교가 이끌어가는 환경 활동을 지원한다. * 건강한 마음을 위한 센터 홈페이지 / 로카 이니셔티브 * 인터뷰: 시드니 탐슨, *번역: 이영희
시드니 Sydney: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샤카디타 호주대회에서 환경운동에 대해 발표하셨던 「방법에 대한 약속: 지역사회 회복으로서의 환경 불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해주세요.
Hello, Dekila! Thank you so much for doing an interview with us at Sakyadhita Korea. The presentation you gave at the Sakyadhita International conference in Australia on the environmental movement was very impressive, and we are so curious to learn more about you! Could you briefly tell us about yourself and the work you are doing?
데낄라 충걀빠 Dekila Chungyalpa:
저는 히말라야 동쪽, 시킴 지역의 신실한 티베트 불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다음 생에는 스님이 되겠다고 서원을 세우셨는데, 이것은 저의 어린 시절 세계관 형성에 바탕이 되었습니다. (출가는 시킴 지역의 나이든 여성이나 미망인, 혹은 다른 이유로 홀로 된 티베트 여성들의 일반적 선택이기도 하죠) 어릴 때부터 자연과 환경에 깊은 친밀감을 가졌고, 대학에서 환경문제를 전공한 후 국제 생물 다양성 보존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경력은 ‘세계 자연 기금(World Wildlife Fund, WWF)’에 입사하여 히말라야와 메콩강 유역(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 역자주)에서 일한 것입니다. 환경과 기후 변화의 위협이 가속화되는 것을 보면 당면한 현실이 매우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이 일이 저에게 잘 맞습니다. 2008년, 17대 까르마파께서 저에게 히말라야 지역의 비구사원과 니승원에서 참고할 환경지침서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시길래 즉시 승낙했죠. 환경지침서를 받은 티베트 승가에서 연수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잇달았고, 연수를 받은 사원에서는 직접 환경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에 쿄륭(Khoryug)이라는 연합단체를 조직하여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삶의 모든 상황, 즉 저의 가족, 교육, 종의 다양성 보호 활동에 참가한 경험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습니다. 히말라야 지역의 여러 사원이 보여준 노력과 리더십 덕분에 용기를 내어 WWF에서 ‘성스러운 지구(Sacred Earth)’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세계의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천주교회, 동아프리카의 무슬림회, 미국의 복음 기독교회와 함께 물 문제부터 야생동물, 기후변화까지 망라하는 여러 현안을 다루었죠. 그러다 종교가 이끌어가는 자연보존과 기후대책에 대한 연구를 위해 예일대학에 입학했습니다. 2018년에는 건강한 마음을 위한 센터(Center for Healthy Minds)의 리치 데이빗슨(Richie Davidson)박사의 제안으로 위스콘신-매디슨대학에서 로카 이니셔티브(Loka Initiative)를 설립하여 현재 이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I was born to a devout Tibetan Buddhist family in Sikkim, in the Eastern Himalayas. Both my grandmother and mother, made the decision to take vows and become nuns later in life (a common option for older Sikkimese and Tibetan women who are widows or alone for other reasons) which formed the basis of my worldview at a young age. I had a deep affinity to nature and the environment as a child and grew up to study and work on environmental issues. For the first part of my career in the field of international biodiversity conservation, I worked for the World Wildlife Fund and in the Himalayas and the Mekong regions of Asia. While the nature of the work itself could be disheartening given the acceleration of environmental and climate threats, I loved my job. In 2008, His Holiness the 17th Karmapa asked that I create environmental guidelines for Tibetan Buddhist monasteries and nunneries in the Himalayas. Of course, I immediately said yes. The Tibetan Buddhist monks and nuns who received the guidelines started asking if they could get direct training. And, once we initiated those, the monastics who went through the training began creating and implementing environmental projects on the ground. They organized themselves into an association known as Khoryug (www.khoryug.info), which is still very active today.
All the circumstances in my life – starting with my familial lineage to my education to my frustration with how biodiversity conservation was often practiced – brought me to that point. Due to the leadership of and progress made by the monastics in the Himalayas, I found the courage to create a program at WWF called Sacred Earth (www.worldwide.org/religion) which allowed me to work with different religious leaders around the world – for example with the Catholic Church in the Amazon, the Muslim Council in East Africa, and Evangelical Christians in the United States - on issues ranging from water to wildlife to climate change. Eventually, I went to Yale University to research and work on faith-led conservation and climate action and in 2018, was invited by Dr. Richie Davidson at the Center for Healthy Minds to come and create the Loka Initiative (https://centerhealthyminds.org/loka-initiative)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 Madison, which is where I am now.
시드니: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인도에는 불자 수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데킬라님이 자란 곳은 불자가 많은 편인가요? 다른 곳에서 하신 인터뷰를 보니 어머님이 스님이라고 하셨는데, 어머니로부터 불교의 영향을 어떻게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Koreans generally believe that there aren’t many Buddhists in India, but what about where you grew up? Did you grow up around other Buddhists? We’ve also heard that your mother was a Buddhist nun. How has she helped to shape your perception of Buddhism growing up, if at all?
데낄라:
인도의 불교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8~9세기의 티베트 제국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현재의 부탄과 네팔지역뿐 아니라 인도 라다크부터 시킴, 아루나찰프라데시 등 히말라야를 포함한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어떻게 통치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죠. 그러면 시킴이 1975년 인도에 합병되기 전까지 부탄과 비슷한, 독립적인 불교 왕국을 유지한 큰 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제가 나고 자란 시킴은 언어, 종교, 문화의 많은 부분이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지역 내 유명한 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시다가 39세에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데첸 장모’라는 법명도 받으셨죠. 수계 후 인도 북서쪽의 셰라블링 지역에서 타이 시투 린포체의 지도하에 3년 3개월 간 단독 안거를 하셨고, 그 후에는 수행을 계속하면서 번역과 교육에 힘쓰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사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무척 감사한 일인데, 당시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뛰어난 지도자분들의 법문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1997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방학을 이용해서 총 2년 정도 어머니의 시자로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어머니는 제 첫 은사이십니다. 왜냐하면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주신 불법이 제 안에 뿌리내려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의 추억 중 하나는 여성의 몸 속에서 수정란이 어떻게 배아가 되어 태아로 성장하는지 가르치기 위해 엄청나게 큰 의학 서적을 가져와 활용하면서 연기의 개념을 그것에 연결시킨 일이었습니다. 수정란이 태아가 되는 동안 의식은 언제쯤 형성될까? 자아는 어디에 위치하며 언제쯤 형성될까? 어머니와 탯줄로 연결된 상태일 때 자아란 도대체 뭘까? 그런 대화를 나눌 당시 저는 겨우 10살이었지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제가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어머니와 동등하게 토론하도록 이끌어 주셨어요. 항상 저만의 길을 닦도록 격려하셨죠. 어머니가 좋아하던 말씀 중에 “길이란 없어, 단지 발이 다음에 놓일 곳이 있을 뿐이지”가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딸로서 이와 같은 삶의 순간을 가졌던 것이 매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One way to understand Buddhism in India is to think about the Greater Tibetan Empire in the 8th and 9th century and how it controlled territories in many parts of mainland Asia including the Himalayas – from Ladakh to Sikkim to Arunachal Pradesh in modern India as well as Bhutan and Nepal. I think that helps contextualize how Sikkim was an independent Buddhist kingdom, similar to Bhutan, until it was annexed by India in 1975. Much of its languages, its religions, and its culture came from Tibet and so the environment I grew up in, as part of the Bhutia community, was completely Buddhist. My mother was a teacher and a principal of a well-known school when she decided to become a nun at the age of 39 and received the name Ani Dechen Zangmo. After taking her vows, she entered the Three-Year-Three-month solitary retreat in Sherabling in Northwest India under HE Tai Situ Rinpoche’s tutelage and went on to practice, translate, and teach afterwards. I feel very grateful for the childhood I had; spending a lot of time in monasteries and listening to great Lamas give teachings and instructions whether I understood anything or not! I also feel very thankful to have been able to spend two years with her, serving as her attendant in between my schooling, before she passed away in 1997. She was my first root guru because she taught the dharma to me in a way that was easily accessible and because it took root within me and continues to bear fruit today. One of my favorite memories is of her using an enormous medical book to teach me how a zygote grows into an embryo to become a fetus that transforms into a child all within a woman’s body and then tying the concept of dependent origination (tendrel du jungwa in Tibetan) into it. Where is the consciousness in this timeline? Where is the self? When is the self? What is the self when the umbilical cord is still connected? I was 10 years old at that time! But she challenged me to think for myself and debate with her even at that age and always encouraged me to create my own path. One of her favorite sayings was “there is no path, there is only where the foot falls next.” I feel so blessed to have had this lifetime as her daughter.
시드니:
미국 대학에서 환경학을 전공하셨는데, 환경학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We’ve learned that you majored in environmental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Is there any particular reason why you chose that major?
데낄라:
저는 청소년일 때 이미 환경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시킴 서쪽에 건설된 수력발전소 때문에 자연은 물론 렙차 마을과 부티아 마을의 신성시 되는 장소가 파괴되어, 주민들의 항의와 단식투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저도 시위대에 참여하기도 하고 정부에 항의문을 써서 보내기도 했죠. 대학에서 지구과학 강의를 수강하고 나서 환경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가 개념적으로 이해했던 것들이 모두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지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유일한 선택으로 여겨지는 경제 성장 모델이 지구적 수준을 넘어 국가와 지역사회 수준에서도 본질적인 결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정치경제학 강의에서 배운 내용은 제가 알고 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어요. 개인을 위한 것이든 국가를 위한 것이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몇 가지 가정을 근거로 합니다. 부를 쌓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고, 협동보다는 경쟁이 필요하며,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결국 자연 자체는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그릇되었을 뿐 아니라 불평등 및 지속 불가능한 자원 착취에 기반한 제도를 떠받치기 위해 고의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저는 체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와 자연을 모두 이롭게 하는 대안을 고안하고 싶었습니다. 나이가 들 수록 교수님들께 고마움을 느끼며, 그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I actively became an environmentalist when I was a teenager due to a hydropower dam that was built in west Sikkim, which inspired local protests and hunger strikes because it was destroying the local environment as well as sacred sites for the Lepcha and Bhutia communities. I remember joining the protestors and writing letters to the government. However, it never occurred to me to become part of the solution for systemic environmental problems until I took an Earth Science course in my second year of college in the United States. Everything I understood conceptually was laid bare in scientific fact. I began to understand that the economic growth model offered as the only option for human development was essentially flawed – at a global level, at a national level and at a community level. I was taking a political economics class at the same time and the contrast couldn’t have been starker between the information I was learning. The tenets of success whether for individuals or for nations is built upon certain assumptions; that material wealth is the ultimate goal, that this requires competition rather than cooperation, that inequitable distribution of resources is the natural state of affairs, and finally, that nature itself has no rights. But, not only are these premises false, they are deliberately created to prop a system that thrives on inequality and unsustainable resource extraction. I realized that I wanted to be part of the solution at a systemic level and work on alternative models that benefit people and nature simultaneously. As I get older, I appreciate my professors more and am so glad to continue to be in touch with some of them. (https://news.wooster.edu/profiles/alumni/2020/02/self-designed-environmental-studies-major-tackles-issues-at-cross-section-of-faith-and-environment/)
시드니:
어릴 때 받아들인 부처님의 가르침과 과학자로서의 정체감 사이에서 갈등을 느껴 보신 적이 있나요? 혹시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Did you ever experience any tension between your identity as a scientist and the Buddhist teachings you were exposed to growing up? If so, could you please explain in what ways?
데낄라:
2019년, 인도우주연구소(ISRO, the Indian Space Research Organization)의 소장이 힌두 사원을 방문하여 인도의 두번째 달 탐사선인 찬드라얀 2호를 위한 공양을 바쳤습니다. 정말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지요! 과학자가 종교를 가지는 것을 평범하게 여기는 곳도 많은데 미국이나 유럽, 특히 자신을 이성주의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는 과학분야에서는 보통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요. 서양 교육에서 저는 소위 상반된 관점으로 같은 가치를 가지고 공존할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만약 동등하게 공존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저의 성별과 인종이 서양의 과학 교육을 받은 서양인들보다 인지적인 면에서 덜 개발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요. 이렇게 식민지주의와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내포된 교육을 받은 우리는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학업이나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타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환경론자입니다. 왜냐하면 생물학에서 사실로 밝혀진 생명체의 특성, 생명 주기, 생태계, 역할과 적응 등 모든 내용이 불법이 진실임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자입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적 개념인 연기, 공, 자비가 자연에 모두 깃들었기 때문입니다. 농업에서 필수적인 벌의 역할(우리가 먹는 음식의 1/3이상이 벌의 수분에 의존합니다)에서도, 우리 몸 세포의 지속적인 순환(7~10년마다 모든 세포가 새로 교체됩니다)에서도, 물이 대기 중으로 증발해 구름이 되고 다시 비로 내려 지구의 모든 생명의 세대를 이어가는 순환에서도 불법을 발견합니다.
I remember seeing the head of ISRO (the Indian Space Research Organization) visit a Hindu temple in 2019 and make offerings for a safe launch of Chandrayaan 2, India’s second mission to the moon. It was quite memorable! While it is perfectly normal to be a scientist and a person of faith and to hold both of these things to be equally true in many parts of the world, it is generally not acceptable in the US and Europe - particularly in scientific fields which uphold themselves as the foundation of rationalism. In my case, western education and training did its best to convince me that these supposedly opposing views could not coexist in equal value and if they did, it was because my gender and race were cognitively less developed than the western scientific tradition. There is an inherent bias within these institutions that is born out of the colonial patriarchal mindset and it has inhibited so many of us who had to make compromises to succeed in their education or careers.
I am an environmentalist because everything that is evidently true in the biological sciences – in the study of living entities, their properties and their life cycles, ecosystems and their services and adaptations – confirms what I was taught as a Buddhist. I am a Buddhist because the philosophical concepts I most value - interdependence, emptiness, and compassion - are all displayed in the natural world whether in the necessity of bees for human agriculture (over one third of the food we eat relies on bee pollination), the constant recycling of our body cells (we lose and replace all of our cells in our body every 7 to 10 years), or in the perfection of the water cycle as it evaporates into the air to become clouds to descend as rain to give birth to all of life on this planet again and again.
시드니:
일반적으로 전통 종교인들은 보수적이며 과학에서 벗어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강한 종교적 신념은 우리의 행동을 변화 시키는데 가장 큰 동기가 될 수도 있지만 과학적 신념과 종교적 신념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텐데요. 이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It is often thought that people who follow traditional religions tend to be more conservative and have beliefs that deviate from science. A strong religious belief can perhaps even drive changes in our behavior as well as collide with scientific ideas. What would be your advice for those going through this type of inner conflict of choosing between their religious background or science?
데낄라:
예전에 달라이 라마께서 법문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만약 과학이 불교의 개념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한다면 불교는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요. 저는 그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아 묻기 어려운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앞으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지 신중하게 점검할 용기를 받았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로서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과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겸손함을 갖추어야 하죠. 공통점은 약간의 불가지론적 마음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며 이로써 자만심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학계든 종교단체든 더 높은 권위자에게 우리 대신 결단을 내리도록 어려운 토론을 넘기는 편이 훨씬 쉽죠. 그러나 우리는 소명의 일부분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사고(思考), 이상(理想), 다양성, 지식체계의 복잡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생명을 받아 세상에 온 은혜가 그 이유 밖에 더 있겠습니까?
다른 종교계와 함께 일했을 때 종교의 규범이 과학적 증거와 일치하지 않거나, 반대로 과학 정보가 종교 관점과 맞지 않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 예로 불자들의 방생을 들 수 있습니다. 방생을 위해 동물, 새, 물고기를 시장에서 구입해서 야생에 풀어줍니다. 방생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큰 자비와 공덕의 행위이지만 종의 보존성의 관점에서 여러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옵니다. 방생 된 종이 생태계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고, 토착종을 몰살시킬 수도 있지요. 또한 밀렵과 밀매에 대한 수요를 창출해서 야생동물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100마리를 방생하기 위해 종 전체를 멸종시키거나 서식지를 파괴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생기면 가장 먼저 질문해봅니다. 이 행위 자체가 종교적으로 꼭 필요한가, 장기적으로 해를 야기하지 않는 적당한 대체물이 있는가? 과학자로서 저의 역할은 타협점을 찾는 것이고, 종교인으로서 저의 역할은 열린 마음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더 큰 사명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방생의 경우 저는 도반들에게 자비와 공덕을 지으면서도 생태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대안을 찾아보기를 적극 권하는 편입니다.
I once heard His Holiness the Dalai Lama give a talk where he said that if science provides evidence that disproves a Buddhist concept, Buddhism must change its stance. It affected me greatly and gave me the courage to ask difficult questions and examine my own faith tradition carefully. As people of faith, we must be open to the possibility that we are wrong and have enough humility to accept that we don’t understand everything. Equally, as people of science, we must be open to the possibility that we are wrong and have enough humility to accept that we don’t understand everything. I think cultivating a tiny amount of agnosticism in both spheres is crucially important and saves us from our own hubris. Of course, it is easier to hand over these difficult debates for an ultimate authority to make the decision for us, whether it is a science body or a religious body. However, we come to life with purpose and part of that purpose requires we think for ourselves and grapple with the complexity of thought, of ideals, of diversity, and of knowledge systems that we are surrounded with. Why else does all of this bounty exist?
There have definitely been moments when I was working with faith groups where a religious edict did not match the scientific evidence or where science-based information did not fit the religious perspective. One example is how Buddhist practitioners feel about the act of mercy release (tsithar tangshe in Tibetan), where they buy animals, birds, and aquatic species from the market and release them in the wild. From the religious perspective, this is an act of great compassion and merit. From a conservation science perspective, mercy release has many negative results; the species may not belong to the ecosystem they are released in and may end up outcompeting and killing off the endemic species that live there. Because the practitioners buy the species in the market, they create demand for wildlife poaching and trafficking, which has negative consequences for wildlife as a whole. Is the saving of those 100+ lives worth the extinction of an entire species or destruction of a habitat down the line? When such differences arise, the first question I ask is whether the act itself is necessary as a religious act and whether there can be a suitable substitute that doesn’t cause long term harm. I feel that part of my job as a scientist is to find these compromises and part of our job as people of faith is to be genuinely open-minded and committed to the larger mission of alleviating suffering for all sentient beings. In this case, I urge my fellow Buddhists in Asia to consider alternatives that also are great acts of compassion and merit making but do not have such severe consequences for wildlife and ecosystems in the longer term.
시드니:
마지막으로 한국의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Is there any message you’d like to share with Korean Buddhists?
데낄라:
한국의 환경문제는 저보다 여러분이 더 잘 아실테죠! 대기질은 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가뭄이나 눈폭풍 등의 기록적인 자연재해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자로서 어떻게 연기법이 자연을 지배하고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강수특성의 변화는 기후변화와 연결되어 있고, 기후변화는 화석연료 사용과 연결되어 있으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성은 자연을 삶의 토대가 아닌 일용품으로 보는 시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에서 호랑이와 시라소니, 곰과 같은 동물이 사라지는 것이 당장은 다행인 것처럼 보이지만 더 많은 종이 사라질수록 생명의 연결망에 구멍을 내어 더 심각하게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환경보호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무를 심든, 태양열 장치를 설치하든,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보장하도록 비영리기구와 협력해서 국회에 건의하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작해야만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re are many environmental problems in Korea that you know better than I do! I understand that the air quality is a major threat for human health and there is a rapid increase of record-breaking disasters including droughts and snowstorms. It is important for us as Buddhists to understand how the laws of interdependence govern our natural world and how all of these things are connected. For example, increased rainfall patterns are connected to climate change which is connected to our dependence on fossil fuels which is connected to how we view nature as a commodity rather than our very basis for life. The disappearance of animals such as tigers, lynx, bears and so on in the natural environment may seem like a reason to rejoice in the short term but are gaping holes in the web of life which will only disintegrate further as more and more species disappear. If we aspire to alleviate the suffering of all sentient beings, we Buddhists must start by protecting the environment in any way we can – whether it is to plant more trees as a faith community or to install solar heating in our own homes or to work with NGOs to call the political parties to ensure Korea becomes carbon free by 2050.
Thank you for the questions!
*시드니 탐슨은 샤카디타 코리아 홍보간사를 맡고 있으며, 샤카디타 코리아 뉴스레터 영문판 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Sydney Thompson is Sakyadhita Korea’s publicity assistant and writer for Sakyadhita Korea’s English cont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