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카디타 포럼 – 제12차 보드가야에서의 백일기도를 회상하며 – 글: 유정스님


제12차 포럼

보드가야에서의 백일기도를 회상하며
발표자: 유정스님
일시: 2021년 3월 26일
장소: 온라인

보드가야는 그 단어만으로도 늘 내게 평안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1998년 10월 중순부터 이듬해까지 100일을 보드가야에서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IMF가 터지기 직전에 출발한 내 유학길은 한국에서 출발할 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로 이어졌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그렇게 겨울 한 철을 보드가야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때 내 마음은 오로지 ‘데첸 왕모(大樂母)’라는 법명을 주시고 기초수행법을 알려주신 티베트의 환생자 린포체께서 권하신 길을 따르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겨울이 되면 보드가야에는 부탄이나 티베트 본토, 다람살라, 인도 동부 등 히말라야산맥에 의지해서 사는 추운 지역의 불교도들과 인도인들이 성지순례로 몰려든다. 솥단지 이불 등 일상생활 도구들을 이고 매고 가족과 함께 오는 그들의 모습은, ‘성지순례란 이런 것이다.’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그 행렬 속에서 나도 방 하나를 구해 한철을 보내기로 했다. 으레 티베트식 오체투지라고 알려진 전(全)절을 하기 위한 널빤지 등 도구들을 준비하고 마하보디 대탑 주변의 보리수 아래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세수하고 컴컴한 길을 걸어가서 마하보디 대탑문 앞에 선다. 많은 이들이 줄지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3시 50분에 문이 열리면 각자의 자리로 가서 나무판을 펴고 도구들을 열어서 4시부터 절을 시작한다. 보리수 나뭇가지들에 누워 밤새 잠을 잤던, 보통사람의 주먹보다 큰 먹새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며 아침을 깨우는 시간은 5시 50분. 너무나 정확한 그 시간에 맞춰서, 모두 하던 절을 멈추고, 누군가가 공양 올린 버터 차 혹은 짜이를 받아서 아침 공양을 한다. 때로는 아무 맛이 없어서 오히려 고소하게 느껴지는 티베탄 빵을 버터 차에 찍어 먹었던 맛도 가끔은 생각날 때가 있다. 한 시간여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오전 내내 절한다. 11시 반쯤 숙소로 돌아가서 점심을 해 먹고, 빨래도 하고, 낮잠도 살짝 자고 난 후, 보통 2시 반쯤 다시 마하보디 대탑으로 와서는 저녁까지 절한다. 저녁 이후는 대탑에서 벌어지는 다른 이들의 수행, 예를 들면 티베트스님들의 ‘쮜(chod)’ 수행이나, 최저음으로 독경하는 소리를 지켜보곤 한다.

티베트불교에서 기초수행법은 보통 사가행(四加行)으로 불리는데, 내게 가르침을 전해주신 캄튈 린포체는 닝마빠 소속이므로 오가행을 전해주셨다. 그 처음이 오체투지 10만 번이다. 그해 겨울 오체투지를 시작하기 전, 나는 채식을 하겠다고 맘을 먹었다. 우유를 소화하는 효소가 없었지만, 요플레를 만들기 위해서 날마다 봉지 우유를 사서 귀퉁이를 조금 자른 후, 낮에 햇빛이 잘 드는 창문가에 걸어두었다가 다음날 그것을 먹곤 했다. 그때까지 효모가 있어야

 

우유에서 요플레가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 무지함이란 … 다행히 위장이 튼튼해서였는지, 아니면 에너지 소비량에 비해서 불균형한 식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배탈을 모르고 지냈다.

어느 순간부터 저녁에 대탑에서 나오다 보면 길거리에 늘어선 삶은 달걀을 파는 리어카들이 눈에서 아른거렸다. ‘눈 딱 감고 하나 사먹을까? … 아니지. 그래도 약속을 했는데…’라는 고민을 몇 번씩 했었다. 그래도 나는 잘 버텼다. 머리가 어질거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잘 참아냈다. 낮에 절할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저녁에 탑문을 나서서 달걀 파는 리어카들을 보면 맘속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때 오후불식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 갈등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86일째 되는 날, 성지순례객과 수행자들을 위해 봉사 나온 티베트 의사들을 찾아갔다. 의사는 문진과 진맥을 하더니, 영양부족으로 내 몸 안의 장기들이 모두 말라붙었다고 했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절하는 것을 그만하고, 남은 날은 하루에 3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채식도 풀고 오후불식도 풀고 맛나는 것을 먹으라고 강권했다. 그 권유에 나는 무장해제되었다. 다음날부터 새벽에 대탑에 가는 것도 포기하고 따스하게 다가오는 바람을 맞으며 9시가 다 되어 대탑에 가서 겨우 삼배를 하고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사람들을 만나고 식당으로 밥도 같이 먹으러 다녔다. 주변의 성지순례를 같이 다니자는 권유도 받고 신나는 날들을 보냈다.

마치 자석에 쇳가루들이 붙듯이, 수행의 끈을 놓고 마음이 풀어지자마자 내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다가왔고, 수행은 이미 저만큼 물러갔다. 그해 가을 델리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불교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극단적인 고행에 대해서 배울 때, 무지한 고행의 무리함을 이해했다. 물론 부처님의 6년 고행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말이다.

그 이후로도 때때로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행할 때 극단적인 일들이 일어나곤 했는데, 적당한 수행, 그것은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으로 경험되었다. 지금은 과하게 불은 체중으로 고민한다. 보드가야에서의 그 겨울 한 철은 내 생애에서 가장 날렵한 몸과 마음을 유지했던 때이기도 했다. 균형 잡힌 마음과 몸은 그렇게 중요한 것임을. 그리운 보드가야~!

유정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