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가의 눈에 비친 금강산 묘길상 – 글: 전영숙

전영숙(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

오늘날 금강산은 불교적으로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평화체제 구축의 시작점이며 문화적으로 남북교류의 상징이다. 정선아리랑 가사에도 등장하듯 금강산이 유명한 것은 단순히 ‘일만이천봉’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팔만구암자’ 즉 우리 민족의 정신문명의 정수를 이어온 많은 불교사찰,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했던 수행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 금강산 불교유적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해서 금강산 내 사대사찰은 물론 작은 암자도 대부분 불타고 말았다. 분단 후 한때 북한에서 금강산의 일부 사찰을 복원하고자 노력했으나 계획대로 되지 못했고 종교를 아편으로 간주하는 정치이념 하에서 복원의 목적도 순수한 불자의 생각과는 한참 다른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 불교계의 금강산 신계사와 개성 영통사 복원은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그렇다면 분단 이후 북한 예술가에게 금강산의 불교 유적은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는 것일까? <금강산 묘길상도>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첫 번째 북한미술품이다. 이 작품을 기증한 한승주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의 설명에 따르면 본인이 2006년 10월 윤이상음악제 참관 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 천리마제작소에서 이 작품을 작가에게 직접 구입했다고 한다.

<금강산 묘길상도>를 그린 화가는 북한의 인민예술가 선우영(鮮于英, 1946-2009)이다. ‘인민예술가’는 북한에서 예술 분야 최고의 예술인에게 부여되는 매우 영예로운 칭호라고 한다. 그는 생전에 작품에서 큰 것을 위해서 부분적인 것을 생략한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큰 것을 위하여 부분적인 것을 파고 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철저한 분석과 엄청난 노력을 바쳐서 창작에 임하는 예술가였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까지 널리 인정받아서 한국과 미국 등 여러 곳에서 전시된 바 있다. <금강산 묘길상도>를 찬찬히 살펴보면 하나하나 세부적인 면까지 철저하게 관찰하고 그렸다고 느껴지는 만큼 평소에 그가 주장했던 예술관이 잘 반영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의 그림은 조선시대 많은 묘길상 그림과 비교해볼 때 매우 사실적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색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금강산 묘길상도, 선우영 (130×53 국립중앙박물관)

‘묘길상’은 내금강 만폭동 깊숙한 곳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이며, 북한 국보급 문화재 제102호이다. 근처에 사찰 마하연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로 ‘마하연 묘길상’이라고 불렀다. 높이 40m 벼랑에 새긴 묘길상은 남북한 마애불 가운데 가장 큰 마애불로서 높이만 15m에 이른다. ‘묘길상’이라는 말은 ‘문수보살’을 뜻한다. ‘문수보살’은 산스크리트어의 음역이고 ‘묘길상’은 의역이다. 조선시대 문집을 보면 이 마애불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문수보살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미륵보살, 또 어떤 사람은 석가모니라고 하는 등 저마다 다르게 보고 있으니 이 또한 읽는 사람에게 재미를 준다.

금강산도 10폭 병풍, 작가미상 (325×177.5 국립민속박물관)

훗날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었을 때 금강산에 들어가서 금강산의 불교유적을 하나하나 복원하고 그 곳에 깨달음을 구하는 많은 수행자들로 가득차면 북한 주민의 가슴에 불교는 다시 피어나지 않을까? 지금 금강산 내 대부분의 사찰이 폐사된 상황에서 금강산 불교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이정표로서 묘길상 마애불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비록 이념은 다르지만 선우영 같은 천재 화가가 묘길상을 화폭에 담아 북한 주민들에게 마애불의 존재를 일깨워 준 것은 참 다행한 일이며, 남한의 불자로서 우리들 또한 이런 작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홍도 묘길상도 (23.6×18.2 간송미술관)

끝으로 묘길상 옆 암자에서 조선 중기 허백명조(虛白明照, 1593∼1661)라는 비구스님이 쓴 <묘길상암>이라는 시를 함께 읽으며 훗날 금강산에서 샤카디타 코리아 회원들이 모여 함께 수행하는 상상을 해본다.

묘길상암〔妙吉祥庵〕

靄靄四山冥 운무 덮인 사방 산들 어둑하니,
參差列畫屛 들쭉날쭉 그림 병풍 펼쳐 세운 듯.
禪居眞寂寂 선방이 참으로 고요하니.
心地自惺惺 마음바탕 저절로 성성해지네.
路映丹楓樹 오솔길 단풍잎들 일렁이고,
松飜白鶴翎 소나무엔 백학이 날개짓하네.
袈裟僧出揖 스님이 합장하고 맞아주는데,
相對雙眼靑 고개 들어 보니 그 눈빛이 푸르구나.

 

[참고문헌]
강혜규(2020), 『동유기실(東遊記實)』에 나타난 금강산의 지리정보와 표상, 《한문학논집》 57
이영숙(2020), 경로를 통한 금강산 유람의 변천고찰, 《한국한문학연구》 77
이성미(202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山律 鮮于英 筆 〈금강산 묘길상도〉, 《미술자료》 97
《매일경제》(2019.7.3.), 《불교저널》(2019.7.9.), 《월간조선》(202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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