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제 18차 샤카디타 세계 대회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감동은 가슴속에 남아있다. 부처님의 딸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어울림의 장을 마련했다. 워크샵, 논문 발표, 문화 행사 등 다채로운 이벤트를 준비한 코엑스 행사장과 행사장 일대 주변 곳곳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을 체험해 보려는 인파로 그 큰 코엑스가 작게 느껴졌고 주변에 활기를 더욱 북돋아 주었다.
이번 대회가 얼마나 성공적이었고 감동적이었는지, 고마운 사람들이 누구누구였는지, 많은 우여곡절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일일이 설명하고자 한다면 몇 시간을 말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초인적인 힘으로 밤낮없이 밀어붙이는 어른 스님들과 실무자 스님들, 팔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준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없었다면 이 행사는 치러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를 알 수 없었던 준비 기간에는 회장 스님을 비롯해 행사 준비 요원들에게 금기어가 있었다. 그것은 ‘장마’, ‘우비’, ‘우산’과 같은 ‘비’에 얽힌 단어였다. 많은 참가자로 인해서 수천 명이 식사할 장소를 봉은사 마당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개막을 앞두고 이미 많은 비가 내렸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한국의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다행히 개막식을 무사히 치르고 하루 이틀 별 탈 없이 지나가는 듯했는데 26일 밤부터 시간당 70mL의 장대비가 내렸고, 비 피해를 조심하라는 기상청의 경고가 있었다. 실제로 하늘에 구멍을 뚫어 놓은 듯 밤새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오후에 있을 워크숍 통역을 하기 위해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봉은사 앞마당에 설치해 놓은 야외 공양소에 도착했을 때,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장대비는 어디 가고 하늘에는 눈꽃이 날리듯 보슬비만 소리 없이 내릴 뿐이었다. 붓다의 딸들이 한마음으로 만들어낸 염원이 한국의 장마조차 멈추게 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개막식에서 폐막식까지 무엇 하나 가슴을 울리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이번 대회의 백미를 꼽으라 한다면 단연 42개국에서 참여한 비구니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함께한 산사 기행이다. 본 행사를 마치고 500여 명의 순례자들이 강원도 일대 월정사와 백담사, 낙산사를 돌아보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월정사였고, 이미 많은 비로 인해 강물이 불어 시원하게 흐르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걸은 후 일행은 2박 3일을 지낼 백담사에 도착했다. 백담사가 큰 사찰이긴 했지만, 그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가 어려워 대부분의 스님과 재가불자들은 각각 80명에서 100명까지 함께 지내는 큰 방에 숙소를 정해야 했다. 큰 방에 딸린 샤워실도 없었고 공동화장실과 작은 공동샤워실이 1~2개 있었지만,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머무는 기간 동안 샤워도 할 수 없고 샴푸 사용도 금지됐다. 미리 사전에 공지했다고는 하지만 한 여름의 찌는 더위 속에서 어떻게 씻지 않고 2박 3일을 보낼지 암담했다. 한국을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무덥고 힘든 기억만 남겨주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행사에 얼마나 많은 기적과 같은 일들이 있었는지는 참여한 사람은 알 것이다. 이와 같은 우려도 기적과 같이 해결되었다. 백담사에 도착했을 때 이전에 내린 비로 인해 강물은 이미 많이 불어 있었고 온도는 알맞았다. 적당한 촉촉함으로 백담사 계곡을 여전히 마음대로 거닐 수 있었고 산책길에 길을 멈춰 돌탑도 쌓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하염없이 앉아 명상할 수도 있었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하게 내려주는 비 때문에 날씨는 쾌적했다. 사찰 안에서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큰방 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하염없이 들으며 쉬는 스님, 도량을 거니는 스님, 진언을 외우는 스님, 좌선하는 스님 등 다양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촉촉한 바람과 동남아에서 오신 스님들이 뿌리는 아로마 향기를 맡으며 높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주변에 빼곡히 자리한 스님들은 잊은 채 나 혼자 이 큰 방에 홀로 있는 듯했다.
큰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스님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에도 감명을 받았다. 24시간을 자유 시간으로 주어졌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스님들은 여전히 각자의 처소에서 시간표대로 수행하는 듯했다. 누가 시간을 정해 준 것도 아닌데 잠시 누워 있는 듯하면 어느새 새벽 예불에 참석하거나 도량을 산책하거나 좌선을 했고, 경전을 읽었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자리이지만 큰소리 하나 나는 일이 없었고, 나라마다 사찰 예절이 다를 텐데 누구 하나 거슬리게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자연스럽게 각자의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아! 이래서 부처님의 딸들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다. 우리는 진심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하나로 묶인 부처님의 딸들이었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수행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진심어린 순박한 미소를 보여주는 스님들, 앳되고 장난기 어린 스님, 단 한 번도 눕지 않고 정진하는 스님이나 등이 땅에 붙은 것처럼 마음껏 잠만 자는 스님 등 모두가 조화로웠고 오묘한 신통 변화라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하나로 묶인 듯한 또 하나의 감동은 회장이신 본각 스님에 얽힌 일이다. 스님은 가장 어른의 위치에 계셨기 때문에 개인 샤워실이 딸린 처소에 따로 머무실 수 있었음에도 우리가 머무는 대중방 한 귀퉁이에 머무셨다. 장기간의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서 스님은 어느 하루 몸이 불편하셨다. 공양도 하지 못하시고 간호사가 걱정할 만큼 스님의 상태는 안 좋아 보였다. 하지만 당신의 컨디션에 상관없이 여전히 할 일을 하고 대회장으로서 자리를 지키셨다. 저녁이 되어 스님이 고단한 몸을 누이셨을 때 미얀마에서 온 두 분의 스님이 회장스님 곁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스님을 살피러 가는 듯했다. 회장스님이 걱정되는 터라 나도 회장스님께 갔다. 불이 꺼진 상태여서 잘 볼 수는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이 벌어졌다. 두 외국인 스님이 회장스님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도 감격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스님의 헌신에 다른 나라 스님들도 스님께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다. 존중을 받는 스님의 모습도, 스님을 섬기는 젊은 스님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우리의 회장스님은 그저 한국의 어른스님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있는 부처님의 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어른이신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흐르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스님들과 큰 방에서 함께 지낸 경험은 아직도 여운이 짙다. 국적과 전통에 상관없이 우리가 부처님의 딸들로 하나가 되는 경험은 너무도 소중하다. 2년 뒤에 펼쳐질 다음 번의 만남이 기대된다. 이번 대회에서 만난 소중한 얼굴들을 다시 만나게 될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