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 붓다의 딸 – 미얀마 빤냐 떼리스님 – 글: 전영숙

빤냐 떼리(Panna Theri)스님

글: 전영숙(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

[세계 속 붓다의 딸 #14] 제18차 샤카디타 세계대회가 끝난 후 3일간 월정사와 백담사, 낙산사에서 외국인 참가자들을 위한 사찰투어가 있었다. 이에 6월 29일 사찰투어 둘째 날 오후 3시 백담사에서 미얀마 빤냐 떼리 스님을 만나 미얀마 여성출가자의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님은 1973년생이며, 출가 전 싱가포르 등지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는 등 사회에서 촉망 받던 여성 인재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사색에 잠기기를 좋아하던 스님은 사회적인 성공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또한 아무리 편리하고 좋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세속의 세계는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스님은 출가를 결심했고, 올해로 법랍 10년차이다. 스님이 사는 곳은 미얀마 동부, 샨 주의 주도인 타운지(Taunggyi)라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만달레이 남동쪽에 위치한 해발 1440m의 샨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는 약 10만 8000명 정도이다. 이곳은 미얀마의 주요 휴양지 중 하나이며, 주민들은 목축과 농업을 위주로 살아간다. 스님은 이곳에 ‘Bodhi Theri Nunnery and Meditation Centre’라는 암자를 창건하여 주지스님으로 계신다. 이곳에서 재가자 3명 포함 총 9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빤냐 떼리스님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기 전에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미얀마는 아직 비구니계 수계를 허용하지 않아서 우리로 치자면 일종의 사미니 스님만 계시는 상황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아래 글에서 스님을 언급할 때 ‘여성출가자’, 또는 ‘여승’이라 표현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님들의 수행과 실력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빤냐 떼리 스님을 통해서 미얀마의 여성출가자가 수행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얼마나 헌신적으로 보살행을 실천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었다. 이날 통역에는 샤카디타 코리아 운영위원 정형은 선생님이 도움을 주셨다.

출가 동기와 스님이 되면 좋은 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색에 잠기기를 좋아했어요. 본격적으로 명상을 시작한 건 15세 때부터였고요. 대학 졸업 후 싱가포르 등을 오가며 사업을 했는데 그럭저럭 운영은 잘 되었지만 왜 그런지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뭐라고 할까, 시간에 쫓기느라 자신을 잃고 사는 것 같았어요. 결국 나를 돌아볼 시간을 충분히 갖기 위해 출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막상 출가에 대한 결심이 서자 엄마가 충격을 받으면 어쩌나 하고 마음이 쓰였어요. 사회생활 열심히 하던 딸이 갑자기 출가하겠다고 하면 얼마나 놀라시겠어요? 그래서 아주 조금씩 엄마와 헤어지는 연습을 했어요. 처음에는 휴가를 절에서 보내겠다며 2~3일 정도 절에 머물다 오고, 그 다음에는 일주일, 나중에는 한 달, 세 달 이런 식으로 시간을 늘려갔지요. 엄마가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분위기가 성숙되었을 때 비로소 출가를 했고요. 제가 출가한 지 올해로 10년인데, 이제 엄마는 저의 출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시는지 몰라요.

저는 제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이 출가라고 생각해요. 출가의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생활이 간소해졌다는 점과 마음껏 명상하며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욕망에 노출된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호텔이나 멋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고, 화려한 백화점 쇼 윈도우를 들여다보며 예쁜 옷을 쫓지요. 그런데 출가하고 나니 옷도 정해진 색깔만 입어야 하고 음식도 주어지는 대로 먹어야 합니다. 이렇게 먹고 입는 데에 신경을 덜 쓰게 되니까 오히려 삶이 맑고 단순해지더군요. 선택할 일이 적어지면 탐욕과 집착도 줄어듭니다. 선택권이 많은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이런 라이프스타일의 전통을 마련해 주신 부처님과 역대 스님들께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미얀마 여성출가자들의 하루일과가 궁금합니다.

미얀마에는 도시건 농촌이건 여승들이 주석하는 암자가 많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비구니계 수계가 허용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대개 재가자들은 비구스님들은 정식 출가자로서 존중하고 보시나 공양을 올리지만 여성출가자들은 정식 출가자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필자: 미얀마 여승들은 10계만 받는다. 그래서 이분들은 비구니가 아닌 틸라신thilashin이라고 부른다. 2016년 통계에 의하면 미얀마에는 약 6만여 명의 틸라신 스님들이 있다.) 그래서 미얀마의 여승들은 재가자들의 보시를 받기 힘듭니다. 얼마 전까지 미얀마처럼 비구니계 수계를 허용하지 않던 부탄이나 태국,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서 최근에 비구니 스님들이 나오고 시작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저희들을 일깨우는 점이 많습니다.

미얀마에서 여승의 암자는 비구 사찰 근처에 있으며, 비구 스님들의 관할 하에 있습니다. 각 행정 구역별로 비구 사찰이 있고 그 밑에 여승의 암자가 있는 것이지요. 비구 스님들은 매일 아침 탁발을 나가서 재가자들의 음식 공양을 받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구족계를 받지 못했으므로 음식 공양을 받을 수 없어 직접 요리해서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탁발을 나가는데 대개 불자들의 가정을 직접 찾아갑니다. 그러면 재가불자들이 저희에게 돈을 보시하거나 감자, 양파 등 음식 재료를 보시합니다. 육류나 생선, 쌀 등의 음식 재료는 재가자들이 보시한 돈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구입하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밭에서 야채 등을 길러 먹습니다. 물론 시장 상인들도 종종 음식 재료를 보시합니다.

우리는 4시 30분에 일어나 6시까지 예불을 하고 6시 30분에 아침 공양을 합니다. 우리 절에서는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수행과 교학 공부에 시간을 더 할애하기 위해 아침공양을 지을 때 점심공양까지 한꺼번에 짓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매일 저희 암자를 관할하는 비구 사찰의 비구 스님들이 드실 점심 공양도 준비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공덕을 쌓는 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오전 10시 30분까지 공부하고 10시 30분에 샤워를 한 후 11시에 점심 공양을 합니다. 대개 점심 공양 후에는 잠깐 낮잠을 자고 오후 5시까지 공부합니다. 그 후에 청소를 하고 밭에서 야채를 가꾸는 등 울력을 하고 6시 30분에 저녁 예불을 하며 9시경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낮 12시 이후로는 마시는 것만 허용되고 다른 음식은 허용되지 않지만 꼬마를 키우는 여승들의 암자는 어린 스님들의 발육을 돕기 위해 저녁 공양을 지어 먹입니다.

미얀마에서 출가하게 되면 명상을 위주로 할지, 학문을 위주로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명상을 중심으로 하는 스님들은 명상센터(필자: 우리로 치면 일종의 선원)에서 명상을 주로 배우고 교학 공부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교학을 위주로 하는 학승들은 주로 경·율·론 삼장을 중심으로 공부하며(필자: 우리로 치면 일종의 강원), 명상은 상대적으로 간단히 합니다.

미얀마 내전과 코로나 팬데믹이 미얀마 여성과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내전이 벌어진 곳은 대개 마을이 불타고 치안이 불안해서 아이나 여성들이 살기 어렵습니다. 교육 시스템도 파괴되어 아이들이 공부할 곳도 없고요. 그래서 저희 같은 여승들이 최대한 이 사람들을 암자에 받아 보호하고 교육도 해주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내전이 시작된 지 거의 2년이 되었고 거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왔어요. 사회적 혼란 기간을 합치면 현재까지 대략 3,4년은 된 것 같아요. 종족간의 싸움으로 파괴된 마을의 부모들은 특히 딸들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여승들의 암자로 보내곤 하지요. 절에 보내면 일단 아이들이 먹고 자는 등의 안전문제가 해결되니까요. 미얀마에서는 군인들이 사찰은 건드리지 못하게 잠정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거든요.

저는 아이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교육 문제라고 봅니다. 나이 어린 아이들만이 아니라 당장 청소년들이 걱정입니다. 학교가 파괴되어 청소년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할 마당에 하는 일 없이 방황하고 있으니 성년이 되어 사회로 나갈 때가 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많습니다.

왜 명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미얀마 사람 포함 모든 세계인이 명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간혹 명상을 절에서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옳지 않습니다. 세수하고 양치질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 늘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명상이지요. 이번 샤카디타 세계대회에 저와 함께 미얀마에서 두 명의 재가여성이 참석했습니다. 이 두 분은 본래 사업하는 분인데 매일 저희 암자에 와서 같이 명상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제 명상이 생활화 되어 마음이 안정되어 이전보다 훨씬 행복해졌다고 해요. 지금 미얀마는 내전으로 여기저기 폭탄이 터지고 틈만 나면 여기저기 총소리가 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하게 생활하고 있어요. 특히 젊은 사람들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목표를 상실했고요. 폭격으로 학교가 무너졌거든요. 교육을 못 받으면 제대로 된 직장도 가질 수가 없게 되겠죠.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이 명상을 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야 해요. 처음부터 한 시간씩 하라고 하면 힘들어 하니까 너무 부담 주지 말고 우선 1분만 해도 되고 5분만 해도 효과가 있어요. 매일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중단하지 말고…

최근 스님이 하시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재가자들께 보시를 받을 때마다 이 분들에게 어떻게 보답할지 생각합니다. 출가자로서 받기만 할 수는 없거든요. 현재 대부분의 미얀마 여성출가자들은 비구 스님을 잘 모시는 것이 공덕을 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저에게 보시한 재가자들에게 제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이 분들에게 법문도 하고 명상도 가르쳐 드립니다.

최근에는 Zoom과 같은 비대면 화상툴이 발달해서 미얀마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에 있는 동남아시아 불자들로부터 명상지도를 해달라는 요청이 종종 들어옵니다. 요즘은 매일 아침 5시부터 6시까지, 저녁에는 9시부터 9시 반까지 화상으로 명상을 가르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비담마를 가르칩니다. 명상은 아침보다 저녁에 참여자가 더 많습니다. 저녁 명상에는 약 30~40명 정도 참여합니다. 명상지도는 영어로 하고 있는데, 미국에 사는 스리랑카와 인도 출신 불자들의 요청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아비담마 강의는 적으면 30명, 많으면 70명 정도 들어오는데 대부분 미국에 정착한 미얀마 사람들이어서 미얀마어로 강의합니다. 이들에게는 아비담마 강의 외에 명상 지도도 해주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열린 샤카디타 세계대회에 참석한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비자 받기가 까다로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그것들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한국 비구니스님들의 열정과 배려와 역량, 봉사자들의 친절함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시설이 너무 좋았고, 오늘 이렇게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와 보니 깊은 산속의 사찰도 마치 호텔 같습니다.

미얀마 스님들 중에는 자신이 영어를 못하고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 대회 참가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샤카디타 세계대회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부디 다음에는 우리나라 스님들도 많이 참석해서 급변하는 시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밖으로 나와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