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9일 국립중앙박물관
글: 안미경(샤카디타코리아 운영위원)
아름다운 가을날, 김은희 선생님의 안내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오랜만의 박물관 나들이라 살짝 설레었다.
절에 가면 불상이, 교회에 가면 예수상과 마리아상이 있는 건 당연하고 그것을 아는 것은 어린 내게도 상식이었다.
기억하건대 불상이 없는 불교시대가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 중학교 세계사 시간, 기원전 3세기, 간다라 지역에 전파된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최초의 불상이 만들어졌다! 그럼 그 전엔 불상이 없었다고?
그렇게 또 하나의 상식이 늘었고 나이가 들면서 본 몇 편의 다큐멘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상기시켜 주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에서 생애 처음 간다라 불상을 보았다.
오똑한 콧날과 입술, 도톰하고 둥근 뺨, 너무나 익숙한 그리스 조각을 닮아있다. 머리 모양조차도.
부처다 보살이다 이름표가 없다면 불상인 줄 전혀 모를 모양새다.
부처님 당시는 물론이고 열반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까지도 사람의 모습을 한 불상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일단 만들어지자 빠르게 전파되어 나갔다. 설명이 필요한 상징보다 명료하고 자극적일 뿐만 아니라 예배의 형식에도 효율적이었으니 당연했을 것이다. 불상은 사람의 발길과 함께 산과 물 그리고 사막을 건너 한반도와 일본에 이르는 동안 겉모습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부처님을 따르고자 하는 바람만큼은 충실히 담아냈으니 2천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의 내게도 절절히 와닿는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우리나라의 불상은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유심히 보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가지만은 눈에 들어왔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목조 아미타불이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앞으로 숙인 모양이 그것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예불자의 시선을 고려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지만 비슷한 시기의 주먹만한 불상 역시 같은 모습인 걸 보면 유교가 통치이념인 세상에서 민중에게 좀더 가까이 가고자 했던 불교의 모습은 아니었나 싶다.
이번 방문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불교는 역시 평화의 종교이며 당시에도 지금도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는 걸 확인한 것이다.
부처님 스스로 세상과 다투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제자들에게도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는 법을 가르치셨다. 불교는 역사상 단 한번도 정복전쟁이나 분쟁을 일으킨 적이 없으며 다툼을 정당화하는 데에 쓰인 적도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실시간 뉴스로 보면서 관세음보살을 저절로 찾게 되는 요즘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