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공덕회의 봉사자 이야기: 남아프리카 철의 여인, 불법을 배운 후 철저히 바뀐 사연

[자제공덕회의 사회봉사]
자제공덕회의 봉사자 이야기: 남아프리카 철의 여인, 불법을 배운 후 철저히 바뀐 사연
慈济意工采访: 南非女強人 習佛法態度轉

저자: 為愛奔走 輾轉歷險終落定
번역자: 전영숙

출전: Tzu Chi: 慈济意工采访: 傾聽擁抱 與親屬在一起志工陸凱聲合十為家屬祈福。


做慈濟長達二十一年的鄭愛堡,改變以往我行我素的個性,現在每做一件事情,都會考慮到是不是能是照顧到很多人,是不是能讓很多人蒙受其惠。 (攝影者:周幸弘)

과거의 저는 진짜 멋대로 살았어요. 제 이야기가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21년간 자제공덕회 자원봉사자로 일해 온 그가 자신의 변화 과정을 나누고자 이야기를 꺼냈다.

1975년 대만이 남아프리카 레소토왕국과 국교를 맺었을 때만 해도 당시 26세의 정애보(鄭愛堡)는 결혼한 지 갓 2달을 넘긴 새색시였다. 우연찮게 시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신랑을 따라 먼 레소토왕국으로 사업을 하러 가게 되었다.

16년 후 1991년 불행히도 레소토왕국에 폭동이 일어났다. 기본적으로 외국인은 모두 엄청난 재앙을 맞았다. 당시 채 1살도 안 된 어린 아이를 등에 업은 나이 많은 여인이 인도인이 경영하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발각되어 여인과 어린 아기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한 것이 기폭제로 작용하여 엄청난 폭동이 발생한 것이다.

정애보의 집안도 당연히 큰 피해를 입었다. 건설자재 모레채취 업무에 투입되던 집안의 총자산 10대의 트럭이 하룻밤 사이에 전소되고 말았다. 아무리 나라가 작아도 분노는 나라의 면적과 무관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결국 레소토왕국에서는 더 이상 생계를 도모할 길이 없어 부부는 빈손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건너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부는 오직 돈을 버는 데에만 전력을 기울여 서서히 기반을 다지고 슈퍼마켓, 옷공장, 벽돌공장, 보석 공장 등 닥치는 대로 사업을 벌였다. 훗날 보석공장마저 강도에게 약탈당하자 골프장 운영을 시작했다.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여성회장을 맡은 그녀는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자제공덕회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20 상자의 옷을 보내는 기사를 읽고 감동해서 직접 자제공덕회 남아프리카 분회에 전화를 걸어 회원이 되었다.

과거에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치안이 매우 좋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들도 강도짓을 일삼았다. 하루는 봉사단원 몇 명이서 봉사를 하러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교통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검문을 마치고 출발하려던 중 한 단원이 보시함이 통째로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를 알고서도 아물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지니고 있던 종이 몇 장을 꺼내어 조용히 메모를 한 후 경찰에게 건냈다.

종이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너무 욕심 부리고 살지는 마십시오.” 쪽지를 받아든 경찰은 약간 흠칫 하는 것 같았는데 동료 봉사자는 역시 아물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출발하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뒤쫓아 오는 것이 아닌가? 경찰은 “다시 한 번 검문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재 검문 후에 보니 아까 사라졌던 보시함이 다시 놓여 있었다. 동료 봉사자는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발했다. 그녀는 말없는 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認為自己很有福報的鄭愛堡,總想著能為照顧戶們做些什麼。圖為鄭愛堡前往南非約堡UCPA腦性麻痺中心進行關懷,為院友按摩。(攝影者:蔡凱帆)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가난한 나라다. 개중에는 물론 부자도 많고 부자 동네도 있지만, 집 없는 아이와 노인들이 즐비하다. 철의 여인 정애보(鄭愛堡)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와서 자리를 잡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들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추운 날 가난한 동네를 돌아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양철 지붕 아래 한 여자아이가 신발도 없이 헤진 옷을 입고 연신 콧물을 훔치며 추위에 떨고 있다. 안타까운 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집안 내부에 흙바닥 위에 깐 종이 한 장이 가족의 침대이다. 그녀는 지금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궁리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래 그녀는 개성이 강하고 다소 오만한 성격이었다. 자칭 눈이 머리 위에 달렸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시간 관리도 매우 철저했던 그녀, 남들이 용무가 있어 만나러 와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았다. 한번은 여동생이 그녀 친구의 말을 그녀에게 옮겼다. “너희 언니는 포커 페이스냐?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사람 참 어렵게 만들더라.”

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현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했다. 사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돈 개념이 부족하다. 어떤 직원은 오늘 월급을 받아가면 내일 다 쓰고 돌아와 다시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성격이 불 같았던 정애보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기 일쑤였다. “왜 그렇게 돈 개념이 없어? 월급 받아가자마자 또 돈을 빌려 달라니.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래?”

그녀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그런 그녀의 성격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10년 쯤 지났을까? 하루는 남편이 그녀에게 감춰 온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당신이 집안의 중심이잖아. 그런데 당신이 미소를 띠고 퇴근하는 날이면 나랑 아들은 마음이 놓이고 그날은 진짜 잘 지나간다고 느껴. 그런데 만일 당신이 인상을 쓰고 들어오면 우리 둘이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매게 돼.”

그녀는 기자에게 말했다. “과거에 저는 늘 제 멋대로 했었거든요. 요즘에 생각을 해 보곤 해요. ‘혹시 내 생각을 공유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돕게 되지는 않을까? 혹시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요.”

이제 그녀는 갈수록 진정으로 자신을 놓는다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최근 그녀는 20년간 경영해 온 골프장 사업을 접었다. 이제 남은 생은 전부 봉사에 바치고 싶기 때문이다. 봉사를 통해서 그녀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인생을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는 항상 아무리 돈을 벌어도 늘 ‘나는 재산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봉사자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업을 병행하자니 기운이 부쳤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계속 왔다 갔다 했다. 돌이켜보면 증엄 스님이 방향을 제대로 잡아 주신 것 같다. 더 이상 마음이 미쳐 날뛰고, 멋대로 살며, 집안에서는 여왕처럼 군림하던 나쁜 습관을 철저히 돌아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