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위한 명상

[명상]
생활을 위한 명상
Meditation for Life

글쓴이: 마틴 베츨러(Martine Batchelor)
옮긴이: 이재순

원글: Dharma Net

배우고 성찰하기

마틴 베츨러(Martine Batchelor)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www.dharmanet.org 중 “생활을 위한 명상(meditation for life)”의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그녀의 책 『생활을 위한 명상』(위즈덤; 미국, 2001)과 그동안의 강의를 바탕으로 이론공부와 함께 실제 명상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글입니다. 원래 홈페이지에는 실제 명상을 위한 추가설명이 녹음되어 있으나 지면사정상 그 부분은 생략하였습니다. 크게 이론과 실제 따라해보기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실제 따라해보기 부분에서는 사정상 옮기지 못한 명상법들도 있음을 밝혀둡니다.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명상의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머리말

여기에서는 실제로 명상을 체험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와 기법 등 여러 가지를 설명해두었습니다. 설명에 따라 직접 해보면 이미 당신 안에 원래 있던 자비와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 불교종파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현대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수행법을 소개합니다.
이 코스는 단지 읽기를 위해 만든 게 아니고 실제 수행을 해보도록 만든 것입니다.

1) 인생이라는 여행

생활을 위한 명상

우리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어떤 특별한 결과만을 위해 수행하는 특별하고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입니다.

명상은 어느 날 깨달음을 얻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기를 배워나가는, 일생에 걸쳐 지속하여야 할 과정입니다.

명상은 특별한 결과를 얻기 위해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밥을 먹듯이 우리 영혼에게 음식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명상은 무슨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므로 혹 명상 중에 어떤 특별한 경험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곧 사라질 것입니다. 명상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알아차리고 이를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2) 집중하기와 질문하기

불교명상의 핵심은 집중하기와 질문하기입니다. 명상으로 질문하기와 집중하기를 함께 계발함으로써 우리는 명상하면서 깨어있을 수 있으며, 더 고요해지고, 명료해지며 주변을 더 깊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주변을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Stephen Batchelor

집중하기는 열려 있는 마음으로 어떤 대상에 일정 시간 동안 머물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질문하기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일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질문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파괴적이거나 부정적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두려움에서 혹은 과거의 기억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됩니다.

명상으로 질문하기와 집중하기를 함께 계발함으로써 우리는 명상하면서 깨어있을 수 있으며, 더 고요해지고, 명료해지며 주변을 더 깊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주변을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집중하기
집중하기를 연습하다보면 얼마나 쉽게 마음이 산란해지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통해 깨어있으려는 의도를 기억하고 집중하려는 대상으로 계속 돌아오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계속 호흡으로 돌아옴으로써 걱정,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것들에 더 이상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게 되고, 훨씬 더 편안하고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변의 소리나 생각들을 붙잡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중을 잘 할 수 있게 되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며 마음은 점점 더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더 열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도 하고, 생각을 놓아 버릴 수도 있게 됩니다. 당신의 마음은 자유롭게 되며 짐으로 여기지 않고 친구처럼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제대로 하는 명상은 무기력해지거나 무슨 특별한 상태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매순간 현재에 머물면서 깨어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 바로 질문하기가 중요하게 됩니다. 집중하기와 질문하기를 같이 연습하면 에너지가 생겨서 감각이 더욱 예리해지며 생생하게 깨어있을 수 있게 됩니다.

질문하기
질문하기는 사물을 비추어보고 인지할 수 있는 마음의 본래 능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경험이나 생각, 인식을 깊이 들여다보고 인지한 후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고정된 방식으로 세상과 스스로를 인식합니다. 질문하기는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지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며 당신의 행동의 원인과 결과를 찾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신이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만큼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며 부정적이거나 파괴적인 습관에서 벗어나고, 긍정적인 면이 더 빛날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깊이 검토할 수 있게 하며, 또한 그 행동의 원인과 결과도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신이 까다로운 친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당신의 결점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집중하기는 당신의 긴장을 줄여서 안정시켜주며, 질문하기는 삶에 열정을 가져다줍니다. 이 둘을 함께 계발함으로써 당신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으며 외부 환경에 더욱 창의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3) 창의적인 깨어있기

인간의 커다란 재능 중 하나는 자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동 조종하는 비행사처럼 반쯤 잠들어 있는 것과 같은 상태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창의적인 깨어있기는 당신의 인생에서 가능한 모든 가능성과 변화에 깨어있도록 합니다. 이 창의적인 깨어있기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수용입니다.


Stephen Batchelor

명상은 당신이 당신 인생의 매순간에 충분히 깨어있도록 해 줍니다. 명상하면서 집중과 질문하기를 동시에 계발하도록 하세요. 그러면 이 두 능력을 계발함으로써 당신은 고요함과 명료함을 계발할 수 있고 이로써 더 창의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Q: 집중하기를 계발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나요?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면 마치 가구로 가득 찬 방처럼 감정적인 정서가 막혀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방처럼 당신의 행동과 마음은 더 여유로워 집니다.

Q: 질문하기는 어떤 좋은 결과가 있나요?
당신의 생각, 느낌, 행동의 원인을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고 그 결과를 추측해 볼 수 있게 합니다. 명상은 스스로 자기를 찾아 떠나는, 자기발견을 위한 여행입니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만나거나, 상황에 처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참여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서 명상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그때까지 하고 있었던 모든 행동은 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몹시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 나는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기를 기대했습니다. 몇날 며칠을 끊임없이 계속 참선 하던 중에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나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큼 자비롭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명상은 당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은 평범함 속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창의적인 깨어있기는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단지 명확하게 보고 동시에 가벼워지는 일입니다. 깨어있기는 우리가 한낱 나비처럼 가장 달콤한 꽃을 찾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이것을 알고 난 후 나는 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정말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인생이 한편의 연극처럼 춤처럼 느껴졌습니다. 명상은 당신이 다른 사람과 같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며 우리가 이 평범함 가운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수용하기
Q: 당신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나요?

창의적인 깨어있기의 바탕은 수용하기입니다. 당신의 긍정적인 점과 재능, 한계 이 모두를 동시에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될 필요도 없으며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스스로를 알아가는 일이 즐거울 것입니다.

당신의 장점과 단점을 수용함으로써 더 이상 이런 것들이 당신 인생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창의적으로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이런 장단점에 압도되거나 또는 무시하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명상을 통해 자신을 자각하게 되면 그 장단점을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명상을 하면서 당신은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야생화나 반짝이는 물결들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됩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주변의 평범했던 많은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10년간 절에 있다가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재가자가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하기 뿐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스님으로 있었던 그 소중한 시기를 생각하면 정말 실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명상훈련 덕분에 청소하는 일을 그저 하나의 “직업”으로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관계개선을 위해
Q: 창의적인 깨어있기가 어떻게 당신과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주변사람에게 당신이 원하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창의적인 깨어있기로 당신은 주변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수용은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주면 당신은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경험하게 되며, 더 친밀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수용을 바탕으로 어려운 점을 서로 나누기도 하며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명상을 통하여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 더 적극적으로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되며, 이때 인생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재미있는 한 편의 연극이 될 것입니다.
명상을 통하여 집중과 질문하기를 계발하십시오. 이 두 능력을 계발함으로써 당신은 더 창의적으로 자각할 수 있습니다.

4) 명상을 위한 영감


Stephen Batchelor

왜 명상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명상은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명상에 대해서 생각할 때와 실제로 명상을 해 보았을 때 사이에는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명상은 영혼의 영양분 같은 것이어서 그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 되며, 고요함과 명료함을 원하는 당신 내면의 자아가 계속 명상하도록 이끕니다.

젊었을 때 나는 정치적으로 몹시 적극적이었으며, 세상을 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구경을 보다가, 다른 사람을 바꾸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처님은 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바꿀 수 없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명상을 통하여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스승을 찾아 떠났습니다. 한국의 절에 도착한 후 스승인 구산스님을 만나게 되었고, 처음에는 무술이나 서예 같은걸 배우면서 한두 해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건 해보지도 못하고 십 년 동안 명상만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가 저는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명상 그 자체만을 위해서 명상하게 되었습니다.

명상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믿고 자신의 잠재력을 믿는 것입니다. 부처의 형상이나 이룰 수 없는 이상이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의 불성을 믿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안 생기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하다 보면 당신 안에서 고요한 명료함이 우러날 것이며, 부정적 반응이나 집착심을 놓아버릴 수 있게 되어 자유로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단계가 되면 이성적인 믿음(belief)의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경험과 더불어 저절로 영성적인 믿음이 깊어지게 됩니다.

시간이 없어서 명상을 못 한다고 말하거나 혹은 덜 피곤할 때 명상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피곤하거나 바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상관없이 다시는 오지 않을 바로 이 순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명상의 경험이 당신을 더 평화롭게 더 지혜롭게 더 자비롭게 바꾸고 있는지 늘 깨어 있는 가운데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5) 지혜


Stephen Batchelor

부처님은 존재의 세 가지 진리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상함, 신뢰할만 하지 않음, 무아 혹은 공

이 세 진리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명상하는 가운데 경험함으로써 지혜를 계발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의 경험을 잘 관찰함으로써 이 존재의 세 가지 근원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상함
Q: 당신은 마치 당신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존재들이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지 많나요?

만물의 무상함에는 변하는 것과 죽음, 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 직전의 마지막 호흡을 보면서 나와 나의 가족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이후 나는 인생을 더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죽음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여기면서 살고 있지 않나요? 죽음은 우리가 매 순간, 매 호흡마다 깨어있게 해주며, 숨 쉬고 보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일깨워줍니다.

신뢰할만 하지 않음
존재하는 것들의 두 번째 특성은 모든 것들이 변하기 때문에 그리 믿을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직도 언젠가는 영원한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지 않나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파트너, 완벽한 자녀, 멋진 직업, 아름다운 집, 재미있는 경험 등 이런 것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단지 잠깐의 기쁨을 줄 뿐입니다.

Q: 당신은 늘 행복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강요함으로써 스스로를 공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대신, 실제로 현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들여다보십시오. 어떤 일이나 감정, 느낌이 늘 변함없거나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수용하게 되면 좀 더 쉽게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무아 혹은 공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구체적인, 독립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독립된 실체가 없습니다. 당신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닙니다. 당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부모님의 유전자로 물려받은 육체, 환경, 숨 쉬는 공기, 먹는 음식, 경험들, 그리고 당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 등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당신을 이루는 것입니다.

6) 집착 내려놓기

우리는 종종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인식의 틀에 우리를 가두기도 합니다.
집착하지 않기는 어떤 것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그것을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생이라는 물결을 따라가면서 순간순간을 충분히 경험하면서 잘 흘러갈 수 있습니다.


Stephen Batchelor

Q; 당신은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관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우리는 집착하는 모든 대상을 붙잡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집착하기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붙잡으려는 집착 뿐 아니라 그 반대로 부정적으로 바로 반응하여 밀어내려는 집착도 있습니다. 이 부정적인 집착은 바로 거부하거나 밀쳐냄으로써 그 대상이나 상황이 더욱 커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금으로 만든 소중한 물건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너무 소중해서 당신이 그것을 꼭 잡고 있을 겁니다.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구부려 꽉 잡고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뺏어 갈 수 없을 겁니다. 잠시 후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너무 꼭 잡고 있어서 손과 팔에 경련이 올 것입니다. 또한 다른 것을 잡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이 금으로 된 물건을 내려놓는 게 답일까요? 집착하지 않기는 이완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손가락을 펴고 부드럽게 손을 펼치는 겁니다. 여전히 그 물건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내려놓을 수도 있고 다시 집을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일을 하기위해 금으로 만든 물건을 내려놓고 손을 쓸 수도 있습니다.

Q: 손가락을 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집착하지 않기는 무관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심과 자비로 이끌어 줍니다. 마치 엄마가 아기를 아주 적당한 정도로 잘 안아서 아기가 너무 답답해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게 안아서 아기가 바닥에 떨어지지도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Q: 말이나 상황, 관계나 물건에 집착하면서, “내 것, “나” 또는 “나에게 일어난 것”이라고 이름 붙여서 당신과 동일시하지는 않나요? 그것이 실재한다고 늘 말함으로써 그 경험을 더 강화시키지는 않나요?

이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듣기 싫은 말이나 불쾌한 경험, 이런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됩니다. 결국은 그런 것들에 완전히 압도되어 당신은 무기력해지고 마침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공이나 무아의 개념을 잘 이해한다면 붙잡을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스로에 대한 집착과 제한하기
외모나 성격에 대한 집착이나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집착으로 스스로를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Q: 당신은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서 이상적인 모습을 세워두고 이에 집착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착한사람 나쁜 사람, 혹은 화를 잘 내는 사람 등으로 규정짓지 않나요?

“착하다”, “나쁘다” 이런 것들은 외부조건이나 내적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간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롤모델이 되었지만 아버지로서는 별로 훌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디의 아들은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Q: 당신은 당신의 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나요?

당신이 하고 있는 일과 당신을 같은 걸로 규정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선생이면 교실 밖에서도 선생이 되어 남에게 이것저것 가르치기를 좋아합니다. 언젠가 명상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저의 집에 며칠 머문 적이 있는데, 하루 종일 알아차림에 대해서 가르치려 해서 잠시 정말 피곤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붙잡기와 자비심
어떤 마을에 스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어느 날 젊은 아가씨의 부모가 자기 딸이 임신 한 것을 알고 다그쳐 물었습니다. “누가 아이 아버지냐?”고. 겁에 질린 아가씨는 절에 있는 스님이 아기 아버지라고 얘기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나자 그 부모는 스님에게로 뛰어가 “이 아기는 당신의 자식입니다”하고 아기를 두고 나와 버렸습니다. 스님은 “아, 그래요?”하고는 아기를 받아 극진히 돌보았습니다. 몇 달 후 아가씨가 사실은 마을에 있던 젊은 어부가 아기 아버지라고 사실대로 말하자, 부모들이 다시 스님에게 와서 아기를 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스님은 “아 그래요?”하고는 아기를 돌려주었습니다.

스님은 아기가 왔을 때 내치지 않았고, 떠날 때 잡지 않았습니다. 다만 필요할 때 본인이 자비를 베풀었을 뿐입니다. 그 아가씨나 부모를 판단하지도 않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항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상황에 대처했을 뿐이었습니다.

때로는 이처럼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상황에 적절히 응대만하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우리는 좀 더 단순하게 적절하게 반응 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깁니다.

7) 깨어있기

깨어있기는 단 하나의 경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탐 진 치 삼독을 완벽하게 녹이는 일이며 어떤 외부의 대상에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의 본성에 깨어나는 것입니다. 불교 명상의 근원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순간이 그 뿌리입니다. Buddha의 Budh는 “깨어나다”의 뜻입니다.


Stephen Batchelor

Q: 깨달음(enlightenment)이란 단어를 들으면 당신은 어떤 것이 떠오릅니까? 깨달음이 완벽한 평화와 일상에서의 완벽한 만족을 가져올 것이며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고 완전히 새로운 당신으로 바뀔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아니면 깨달음을 통해 세상을 구제하리라 생각합니까?

Q:명상하는 중에 평소 자기와 다른 그런 자기 상태를 경험 한 적 있나요? 그것이 깨달음의 상태일까요?

구산스님은 이런 상태는 깨어났거나 깨달음의 상태가 아니고 단지 마음의 본래 광명을 인지한 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잠깐 동안은 덜 긴장되고 덜 집착하게 되어 더 많이 열려있고 자비로워집니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명상을 연습하고 있을 때뿐이며, 상황이 바뀌면 사라지게 됩니다.

부처님의 깨어나기는 이런 명상상태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당신 안에 있던 탐, 진, 치를 완벽하게 녹임으로 가능했습니다. 이런 경험에서 나온 것이 계, 정, 혜입니다.
테라바다 불교에서는 깨어나기를 4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깨어나기는 뭔가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놓아버리는 일이며, 원래 있던 것을 찾아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Q: 언제 깨달음이 올까요? 이번 생에는 불가능해 보이나요? 아니면 바로 여기 있을까요?

예전에 한국의 비구니 스님 한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스님은 매일 아침 하루의 매순간을 부처로 살 수 있기를,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쓸 수 있기를 기원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또 매일 저녁에는 하루를 돌아보며 얼마나 하루 동안 부처로 잘 살았는지 스스로 반성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도 동시에 중생이기도 한지라 실수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의 단계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심우도’를 보면, 마지막 네 개 그림이 깨달음의 다른 면들을 보여줍니다.
일곱 번째 그림, 망우존인 에서는 몸과 마음이 구분이 없이 모든 것이 명상이 되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여덟 번째 그림, 인우구망은 “나”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단지 명상하고 있을 뿐인 상태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경험하는 스스로가 있을 뿐입니다. 아홉 번째 그림, 반본환원 에서는 당신이 세상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며 행동하는 겁니다. 열 번째 그림 입전수수에서는 깨달음이란 스스로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위한 것이며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를 기쁘게 해주고 필요한 것을 나눠주는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깨달음의 단계는 위와 같이 반드시 일직선으로 일어나지는 않으며 오히려 나선형모양으로 서로 겹치기도하며 당신에게 익숙했던 것에서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8) 명상체험해보기

기본명상
불교명상은 보통 다음 4자세 중 하나로 수행합니다: 앉기, 걷기, 눕기, 서기(행주좌와)

[앉는 자세]
보통 방바닥에 가부좌를 하고 앉습니다.
발바닥을 위로하고 발목과 발을 반대편 허벅지에 올려두어 연꽃 모양이 되게 합니다.
종아리 부분을 바닥에 두는 반가부좌로 앉을 수도 있습니다.
앉을 때는 쿠션을 두 개 준비하여 하나는 편안하게 그 위에 앉고, 다른 하나는 엉덩이 부분에 받쳐서 무릎이 바닥에 잘 닿도록 해줍니다.
무릎 사이에 쿠션을 대고 바닥에 꿇어앉는 방법도 있습니다.
위 방법이 모두 불편하면 허리를 똑바로 세운 채 의자에 앉아도 됩니다. 의자에 앉을 때는 등을 의자에 기대지 않고 머리 정수리 부분을 하늘 쪽으로 살짝 당긴다는 느낌으로 앉습니다.

호흡명상
등을 곧게 펴고 편안하게 몸을 긴장하지 않게 앉습니다.
심호흡을 두세 번 합니다.
호흡과 공기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호흡을 상상하거나 시각화하지 않고 단지 호흡을 경험합니다.
호흡을 더 깊이 하거나 얕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조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순간순간의 호흡을 알아차리기만 합니다.
주의가 산만해지면 알아차리려는 처음 의도를 상기하고 호흡으로 다시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옵니다.
어떤 특별한 느낌이 올 수 있지만, 그런 걸 붙잡거나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이거나 하지않고 단지 저절로 오고 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호흡을 깊이 들여다보십시오. 콧구멍과 피부 숨구멍을 통해서 드나드는 공기의 흐름을 들여다보십시오,
모든 존재가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있음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 해보십시오.
식물과 나무들이 당신이 호흡하는 공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동물들도 같은 공기로 호흡합니다. 호흡에 집중하고 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보십시오.
호흡으로 돌아오고 세상으로 돌아오십시오.
호흡과 하나가 되고 세상과 하나가 되세요.
온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에 깨어있도록 하세요.
눈을 뜨고 등과 다리의 긴장을 풀고 천천히 일어서십시오.

(중략)

간화선
화두참선은 당신이 스스로 불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깊은 명상에 들어가기 위해 화두, 즉 공안을 이용합니다. 1,700개가 넘는 공안이 있으며 이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공안은 “이 뭣고?”입니다. 걸을 때나 서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항상 “이 뭣고?”를 반복해서 묻는 겁니다. 방법은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이 뭣고?”를 반복하는 겁니다. 구산스님은 이때 “이 뭣고?”로 시작해서 질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 뭣고?”로 또 시작해서 원을 이루듯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방법은 한번 질문하고 그 의심하는 느낌을 갖고 그 자리에 잠시 머무는 겁니다. 만약 질문이 들뜨거나 혼란스러워지면 다시 호흡으로 돌아갑니다.

당신 스스로의 존재에 빛을 비추어서 “생각하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생각하기 전, 당신은 무엇입니까?”하고 질문하는 겁니다.
구산스님은 이때 질문하는 것은 어떤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처도 아니고 몸의 주인도 아니고, 의식의 근원도 아니고, 다른 그 어떤 것도 대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뭐라고 설명해도 그것은 단지 말뿐이며 실제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집중과 탐색이 함께 있으며 반복해서 “이 뭣고?”를 물음으로써 현재 이 순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뭣고?”질문은 의문의 바다로 깊이 들어가는 디딤판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니다.

화두참선은 몸 전체를 던지는 다이빙과 같습니다. 차 열쇠를 잃어버린 걸 갑자기 알았을 때, 호주머니에 있는 줄 알았던 열쇠가 없다는 걸 갑자기 알았을 때, 그 당혹감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과 함께 하는 것이며, 존재 그 자체의 경험에 열려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에 대해 더 열려있고 더 유연해지며 마음의 여유 공간을 더 찾을 수 있습니다.
흰 눈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어린이는 실제로 눈을 보고 만지고 가지고 놀고 맛볼 때에 비로소 눈을 알게 됩니다. 구산스님은 참선을 하면 할수록 저절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설명을 들어도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오해할 뿐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 살아 있도록 몸과 마음 전체가 질문이 되도록 하는 겁니다. 계속해서 진지하게 질문하다 보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그 순간이 옵니다.

참선 중에 일어나는 망상을 다루는 법
부처님은 명상 중이나 일상생활 중에 일어나는 망상을 다루는 5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습니다.

(1)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부처님은 부정적인 생각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하십니다. 작은 자비로운 생각으로도 자신을 짓누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녹여버릴 수 있습니다. 당신을 해친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이 늘 나쁘다고 말하여 악화시키는 대신 그가 친절 했던 때를 생각합니다. 갑자기 비싼 물건을 사고 싶을 땐 누군가를 위해 작은 선물을 사는 것으로 탐욕을 관대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2)상처가 되는 것을 알기
부처님은 생각이 초래하는 결과를 늘 알고 있어야한다고 하십니다. 당신이 옳다는 생각은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반복하다 보면 독선적으로 되기 쉬우며, 당신과 주변사람들을 화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알아차림과 주의집중으로 이런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3)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늘 깨어있기를 강조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것 같지만, 너무 생각이 강하여 억제하기 어려울 때는 산책이나 수다 떨기나 책읽기 같은 걸로 주의를 돌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정적인 에너지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4)생각에 대해 의심해보기
”방금 어떤 일이, 무엇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등의 질문은 생각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합니다.

(5)밀어내기
마음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셀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순수의지로 스스로에게, “자, 이제 그만.(Let it go for now)”이라고 말해 보십시오.
우선 알아차린 다음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면 해결책이 스스로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으며 그 영역 또한 무한대입니다.
다음 부처님의 게송을 늘 기억합시다.

생각은 말로 나타나고,
말은 행동으로 나타나며,
행동은 습관으로 발전하며,
습관은 성격이 됩니다.
그러니 생각을 잘 지켜보고,
모든 존재들을 염려하는 사랑이 자라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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