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불사로 자성(自性)의 소리를 듣다

[중국불교이슈]
음성불사로 자성(自性)의 소리를 듣다
音声做佛事 反闻闻自性

저자: 陳慧蓉
번역자: 전영숙

출전: 佛教在线 : 音声做佛事 反闻闻自性

이 글은 대만의 ‘중화국제불교범패음악교류책진회(中華國際佛敎梵唄淫樂交流策進會)’ 이사장 자광(廣慈) 스님이 불교 잡지 <인생(人生)>과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자광 스님은 70여 년을 범패음악 음성 불사를 하신 대표적 인물입니다. 평생 범패 음악을 해 오시면서 느낀 소회와 범패음악의 의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广慈长老(台湾“中华国际佛教梵呗音乐交流策进会”理事长)

제 나이 올해로 96세, 속가는 본래 중국 대륙 강소성 여고현(如皋縣)입니다. 어려서 노래를 엄청 좋아해서 매일 입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자랐어요. 하루는 큰스님이 저희 집에 오셨다가 제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주목하셨나 봐요. 선생님은 바로 저희 어머니께 말씀하셨어요. “보살님, 보살님은 아들이 둘이시니 한 분은 출가를 시키십시오.”라고요. 자식 하나를 출가시키면 9족이 하늘에 난다고 설득하셨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말씀하시더라고요. “네가 나 따라 와서 출가하면 맑은 복을 누릴 수 있단다!” 라고요.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에 솔깃해서 그길로 스님을 따라나섰지요. 그때 제 나이 22살이었는데 그길로 남경 서하사(栖霞寺)로 출가했습니다.

어렸을 때 <자비도량참법>을 많이 했어요. 어른들이 그러셨죠. 동자승이 염불을 해 봤자 입으로만 할 뿐 마음은 없다고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그저 어디 하라고 하면 거기 하고 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염송하는 법이나 법기를 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어요. 그냥 저 스스로 보고 듣고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걸 따라서 불렀을 뿐이죠. 저는 절대음감을 타고 났던 것 같아요. 예불 때하는 곡조는 대개 같은 곡조가 중복되어 출현하기 때문에 한번만 들어도 동일한 곡조가 수십 번 반복이 되지요. 그래서 계속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리에 박히는 것 같아요. 법기를 칠 때는, 본래 제가 왼손잡이였는데 저희 어머니가 억지로 오른손잡이로 만들려고 애를 쓰셨거든요. 덕분에 법기를 칠 때 두 손을 다 잘 활용할 수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유리하죠.

염송하면서 자성을 반문(返聞) 해야
나중에 저절로 느낌이 왔지요. 이 일은 음성으로 불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요. 송창을 할 때 핵심은 자성불의 소리를 되돌려 듣는 겁니다. 내면으로부터 지극한 마음으로 소리를 냅니다. 이어서 이 소리를 스스로 耳根으로 듣습니다. 이렇게 한 번 돌이켜서 마음을 하나로 향하게 하여 산란하지 않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소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一心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수지법이지요.

제가 부르는 범패는 해조음(海潮音)입니다. 좀 천천히 부르는데요, 이렇게 하면 산란하던 마음도 가라않게 되지요. 법구를 너무 세게 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디스코 음악 같은 경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마음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속도가 빨라지잖아요? 이건 우리가 범패를 부르는 목적이 아닌 겁니다.

해조음은 수행 음악입니다. 어떤 불자님은 이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법회 때 범패를 너무 느리게 부르면 졸리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빨리 부르면 분위기가 고조되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수행이라는 범패의 본 목적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수행은 들뜨면 안 좋습니다. 고요하게 마음이 내려앉아야 합니다. 자성을 돌이켜 소리로 듣는다면 최고입니다. 우리의 수행이 부족하여 이 수준에 이르기 어렵게 느낍니다. 그래서 음성공양을 활용하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참회를 왜 해야 할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인들 허물이 없겠습니까? 인간이라면 과오를 범하기 쉽다. 과오를 범하면 악업을 짓게 된다. 악업을 지으면 죄업이 생기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게 되는데, 단순히 현생의 마음뿐 아니라 다음 생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참회를 통해서만이 잘못을 고쳐 선으로 향하여 마음의 죄악감을 떨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참회를 통해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여 그 공덕을 주위 벗들에게 회향해야 한다.

참회 의례는 마음을 온전히 다하는 데에 핵심이 있어
그런데 과연 문자라는게 이처럼 큼 힘이 있는 것일까? 한 편을 찬송하거나 염송하면 과연 이처럼 큰 공덕이 따라온다는 게 맞는 말일까? 사실 아니다. 참회 의식을 행하여 효과를 보려면 핵심은 ‘마음’에 있다.

참회 법회에 가거나 집에서 힘써 참회의식을 하거나 간에 경건하고 성심있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생사를 떠난 마음, 왕생정토의 건절한 발원이 없이 참회수행을 하다면 아무리 아름답게 부르고 아무리 큰 소리로 염불을 한다고 해도 한낱 도량을 장엄했다거나 종교적 감정을 자아냈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실상은 수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을 한 것이다.

참회의식을 할 때에는 모름지기 身、口、意가 함께 상응해야 한다. 몸으로 일체 부처님께 예를 행하며 입으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으로 三障을 녹이기를 간절히 발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죄업 참회가 이루어질 수 있고, 비록 문구의 의미를 잘 모른다고 해도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연세가 있으신 상당수 불자님들은 그 참회문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래도 일심으로 염송하면서 그 염송하는 마음을 돌이켜 정성을 다하는 분들이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경문을 송독할 때 글자를 잘 읽기 위해서 마음을 문자에만 두면서 제대로 ‘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효과가 없다. 예를 들어 천도재 아귀 시식 의례 중 쌀알을 밖으로 던지면 그 쌀을 받아먹을 수 있을까요? 따라서 반드시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한 알의 쌀을 수미산의 크기로 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악도에 떨어진 중생이 받아먹지 못할 것이다.

어떤 불자님이 가만히 다가와 물었다. “스님, 우리 조상님이 진짜 천도가 되셨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한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나의 마음을 다해 노래하고 염불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을 뿐이다. 당신의 조상이 천도가 되셨는지 아닌지는 그 사람의 업장의 무게에 따를 것이다. 만일 업장이 가볍다면 곧바로 천도가 되었을 것이요 업장이 무겁다면 단박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너무 서두르지 마록 매 년 참가하여 게을리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거듭 강조하는 것이니, 법회에 참가할 때는 모름지기 마음을 다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중략)


广慈长老(台湾“中华国际佛教梵呗音乐交流策进会”理事长)

범패와 염불, 다르지만 같은 길
방편 문은 많으나 돌아가는 길은 하나의 문밖에 없다. 참회의 목적은 염불과 같다. 모두 정토의 한 문을 향해 가는 것이다. 참회의식 후 염송하는 회향게로 ‘원이차공덕 장엄불정토 상보사중은 하제삼도고 약유견문자 실발보리심 진차일신보 동생극락국(願以此功德 莊嚴佛淨土 上報四重恩 下濟三道苦 若有見聞者 悉發菩提心 盡此一身報 同生極樂國)’나 “송경공덕수승행 뮤뵨숭복개회향, 보원침약제중생, 속왕무량광불찰(誦經功德殊勝行,無邊勝福皆回向,普願沈溺諸衆生,速往無量光佛刹。)”이라 하지 않는가? 참회나 염불을 할 때는 먼저 이러한 마음을 갖추고 해야 한다.

예전에 범패를 배울 때는 입으로 전하면 마음으로 받아 기억했다. 그러다 보니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쓰는 범패 음악을 오선지에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음률을 기록해서 전수할 수 있기 때문에 악보만 보면 누구나 알 수 있게 되어 어디서 배운 사람이건 다 같이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잡지 <인생> 기자 진혜용(陳慧蓉) 인터뷰 및 정리) |END